스밈

깊이는 늘 천천히 만들어진다.

by 지애롭게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대개 깊이를 갖기 어렵고, 그 결 또한 가볍기 마련이다.


배움 역시 다르지 않다. 금세 이해한 듯 느껴지는 지식은 아직 몸에 스미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시간을 들여 사유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성찰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배움은 필요한 순간 쉽게 흔들리고 선명하지 않다. 깊이는 속도가 아니라 축적에서 비롯된다.


관계 또한 그러하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곁에 두고 천천히 관찰하며 이해할 여백은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자신의 호흡으로 관계를 쌓고,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려는 사람들은 그 과정 자체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이미 관계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반면 번거로움이 싫어서,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서, 혹은 시간의 효율을 앞세워 살아오며 익힌 방식들을 관계에 곧바로 들이대는 이들도 있다. 그 방식은 솔직함이라기보다 종종 무례에 가깝고, 성찰보다는 편의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기준을 무리 없이 통과한 사람을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 명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에는 한 가지 간과하는 점이 존재한다.


그 무례를 문제 삼지 않은 이들이 이해심이 깊어서도, 성정이 온화해서도, 특별히 잘 맞아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을 경계로 삼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그 순간부터 기준은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까지는 괜찮지 않다는 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결국 그 관계는 처음부터 그들만의 무례의 기준 위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존중을 기반으로 한 합의가 아니라, 묵인에서 출발한 규칙이 그 관계의 분위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애롭게

인스타 www.instagram.com/jiaeropge

블로그 blog.naver.com/yoonjiae

유튜브 www.youtube.com/@jiaeropge

매거진의 이전글7번째 결혼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