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누구에게나 타인의 눈에 한때는 조금 반듯하고 평온해 보이던 시절이 있듯, 나 역시 바깥에서 보기에는 삶이 어느 만큼 무르익어 보이기 시작한 때가 왔었다. 이십 대 중반 그 무렵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연락 또한 부쩍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반가웠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고 찾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이 궁금해하던 것은 나라는 사람 자체라기보다, 내 곁에 머물러 있던 어떤 기색과, 그 안에서 저마다 덜어갈 수 있는 몫이 있으리라는 마음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물론 그것이 내가 특별해서 생긴 무엇은 아니었다. 남들 눈에나 그럴듯해 보였을 뿐, 실은 아주 사소하고 덧없는 것들이었다. 분명 아닌 이들도 존재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 기색 가까이에 머무르려 했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몫을 나에게서 메우려 했다. 그런 마음은 대개 사소한 순간에 드러났고, 그래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정제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 뒤로는 그 시선이 나를 넘어 내 남편에게까지 닿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비슷한 사람들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10년도 훨씬 전쯤, 그런 인간의 습성에 대한 회의가 가장 짙어졌던 어느 해에도 어김없이 나는 이 친구를 만났었다. 18살때부터 친구인 이 친구와는 늘 그렇듯, 1년에 한두번쯤 자연스럽게 만나곤 했었다. 그날 2차로 들어간 바에서 나는 처음으로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이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특별한 반응 없이, 다만 가볍지 않은 눈으로 조용히 끝까지 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연락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약속을 미루고, 때로는 피하기도 했지만, 이 친구와의 만남만큼은 미루고 싶지 않았다. 늘 한결같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간격과 무관하게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 그 한결같음이, 내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와 신뢰로 느껴졌던 것 같다.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속도로, 같은 자리에서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살아오며 익혀온 경계가 요지경 같은 세상 앞에서 문득 흐려지고, 마음이 흔들릴 듯한 순간에도 이 친구는 늘 분명한 태도로 내게 확신을 건네준다. 내가 지켜온 감각이 헛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고, 내가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단단히 붙들어준다. 문득 나는 너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줬을까 반성하게 되는 하루.
오랜 시간을 지나며 새삼 다시금 느낀다. 사람을 오래 믿게 하는 것은 화려한 말이나 선명한 호의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마다 내가 나의 감각을 놓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한 사람의 태도라는 것을. 자주 보지 않아도 늘 같은 마음으로 내 곁을 지나는 그 한결같음 덕분에, 나 역시 다시 나다운 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마워 친구야.
지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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