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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아 May 21. 2024

스마트기기 공포증

콩에게

안녕하세요 콩, 


정말 오랜만이죠. 첫 글은 어떤 글을 올리면 좋을까 고민 많이 했어요. 그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래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너무 어렵게 멀리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늘은 제게 무슨 일이 있었나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오늘은 안 쓰는 상자에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넣고 지하실에 두고 왔어요. 


언젠가부터 스마트기기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어요. 콩과 연락하고 싶지 않아서 블로그와 카톡을 없애버린 게 아니에요. 저는 스마트기기를 보기만 하면 두려움이 올라와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요. 블로그를 통해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그리워요. 그런데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려고 하면 노트북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먼저 들어요. 마치 노트북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처럼요.


제게 스마트기기와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저의 절제력을 잃게 하는 두려운 곳이에요. 늘 제 자신에게 내가 얼마나 자제력이 없는지 일깨우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만을 안겨주는 곳이에요. 


인터넷을 일단 켜기만 하면, 늘 거대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가 검색하고 싶었던 것이 뭔지 기억도 못하고 정신 차리면 항상 이상한 데서 떠돌고 있어요. 인터넷을 막아두어도 인터넷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앱들이 너무 많아요. 제게는 '글쓰기'를 위한 앱만 여러 개가 있는데, 늘 더 생산적이고 더 효율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서 이 앱 사용해 보고 저 앱 사용해 보다가 글도 쓰기 전에 지쳐버려요. 일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때도, 글씨체 바꾸고 글씨크기 바꾸고 이런저런 설정 바꾸다가 또 글도 쓰기 전에 소진되고요. 그리고 하루가 끝나면 늘 스스로를 탓하는 거예요.


'이렇게 집중력도 없고 절제력도 없으면서 네가 무슨 작가가 되겠다고.'


정말 한 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러니까 이제는 노트북을 보기만 해도 자동으로 그런 불쾌한 감정들이 올라와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고요. 스마트기기를 쳐다보기만 하면, 그게 꼭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이리 와, 여기서 더 생산적이고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는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어떤 날은 그런 유혹에 넘어가고, 어떤 날은 스마트기기 없이 무사히 넘어가요. (그런 날은 남편에게 스마트기기를 꽁꽁 숨겨달라고 한 날들이에요.)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날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하루를 마쳐요. 


저는 이런 적이 없었어요. 무언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하게도 싫어해서 약간의 중독증상이 보이면 전부 끊어버렸는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이제 필수품이 되어버려서 없애버리지도 못해요. 도서관에 가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미리 자리예약을 해야 하고, 스마트폰 없이 도서관에 가려고 해도 입실하려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야 해요. 한동안 스마트폰 안 들고 다니다가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상한 건 이 중독증상이라는 것이 예를 들면, 게임이나 흡연이나 술같이 아주 확실하게 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 끊는 것이 더 수월할 텐데 (적어도 제게는...), '생산성'에 중독이 되는 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프로그램에 드는 돈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는 시간은 ‘투자’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 거예요. 내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열심히 뭔가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데, 멀리서 보면 분명히 중독 증상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결국에는 생산성을 더 높이려다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하고 머릿속만 더 산만해지고 끝나요… 


그래서 많은 글들을 종이와 펜으로 써요. (이 글도 손으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 글을 잘 쓰다가도 글에 아주 몰입했을 때는 생각이 너무 빨라서 손으로 쓰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요. 그러면 '손으로 쓰는 건 너무 느리고 생산적이지 못해!'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스마트기기의 유혹에 빠지죠. 그렇게 또 노트북으로 며칠 글 쓰다가 다른 데로 새어서는 며칠을 허비하고 또다시 좌절해요. 


빠르고 생산적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늘 길을 잃고 헤매요. 그래서 스마트기기를 담은 상자를 들고 지하실을 수십 번 오르내려요. 오늘 다시 스마트기기에게서 떨어지니까 이제야 다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종이에 쓴 글을 옮겨 쓰는 동안 다시 꺼내왔지만요...)


이것 외에도 인터넷 공간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쥬! 아직 노트에 써 놓은 글이 더 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요.


콩 생각하면서 쓴 덕분에 첫 글 올릴 수 있게 되었어요. 

저도 정말 마음 깊이 감사와 사랑을 보내요.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 많은데...)

콩 삶도 바쁠 텐데, 뭔가 내 삶에 대한 투정으로 글을 채운 것 같아 미안해요.

바쁠 텐데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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