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아 May 22. 2024

사회 공포증

콩에게

안녕하세요 콩, 


어제 하다만 이야기를 마저 끝내려고 또 왔어요. 인터넷 공간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고, 저의 근황과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어떤 글을 올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나누고 싶었어요. :) 


저는 인터넷이라는 오픈된 공간에 제 이야기를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뭔가 계속 노출되어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 이상 누구든지 나에게 연락을 할 수 있고, 저는 상시 대기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답장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압박감도 있어요. 연락하기 싫은 게 아니에요, 받는 연락이 너무 감사한데도 그래요. 그래서 저는 답장을 정말 느리게 하지만, 연락을 받은 이상 머릿속에서 계속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해요. 물리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에 있어도, 혼자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늘 굉장히 피곤해요. 물론 누구도 제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고 빠른 답장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저 혼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생각이라기보다는 스마트폰과 가까이 있을 때 저의 상태가 그렇다는 말이에요. 이건 사람문제 보다도 스마트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리는 것도 두려웠어요.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막 올린 거예요. 아무나 내 이름을 검색해 볼 수 있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올렸어요. 글을 올리는 순간 내 글이 세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발가벗은 것처럼 어떤 방어막도 없이 노출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게 사회공포증 하고 다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게 거의 5년은 되었어요. 그즈음부터 대인관계에 공포증이 생겼거든요. 벨기에에서 학교 다니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한국에서 '나'라고 생각했던 저의 모습과 벨기에에서 '나'의 모습의 격차가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나'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고 수치스러웠어요. 그래서 전에 말했듯이 너무 숨고 싶었어요. 아무도 제 존재를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올렸던 블로그의 글들을 보고 콩이 생각했던 것처럼,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이 더 이상 아니었거든요. 외국인으로 타지에서 사는 것도, 늘 분리감과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어요. 아마도 이런 부족한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 때문이지만...) 힘들지만 그래도 삶의 의미와 힘을 주는 게 또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솔직하게 저의 많은 것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콩을 만날 수 있었던 거였어요. 내가 여기 있다고, 이래저래 많이 부족하지만 이런 나를 세상에 드러내야 또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소중한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다시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뎌 봐요. 


또 시기가 그렇잖아요. 기후위기며, 전쟁이며, 파괴적인 기술발전이며, 그런 것들 때문에도 많이 앓았어요. 실컷 앓고 나니까 지금 세상에 유일하게 필요하고 유일하게 의미 있는 건 사랑, 우정, 나눔 그런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게 너무 필요하고, 저도 그런 것을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숨지 않고 저의 약한 모습들도 다 나누고 싶어요. 그러면 그게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요. 어제 마음 깊이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는 말, 정말 진심이에요. 정말 진심으로 마음 깊이 우러나서 하는 말이에요.


짧은 근황을 전하자면, 학교를 쉰 지는 거의 3년을 채워가요. 학교를 1년만 쉬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 1년 동안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졌어요. (정말 모순적이죠, 바로 위에 모르는 사람들이 제 글을 읽는 게 너무 두렵다고 써놓고서는...) 그래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1년 동안 열심히 썼어요. 제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 저의 트라우마와 이런저런 기억들, 그렇게 계속 쓰니까 마음의 응어리가 글로 다 떨어져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부터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작년부터 공상과학 소설이 제가 쓰고 싶은 장르인 걸 알게 되었고, 지금은 SF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요.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 저는 언제쯤 정착하려는지... 작가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요. 일단 이 두려움부터...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꿈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이 감사해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되고 싶은 게 없는 날들이 정말 괴로웠어요.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는 저의 꿈을 좇는 여정을 공유하고 싶어요. 제가 글쓰기에 대해 배운 것들이나, 글 쓰면서 깨달은 것들, 제게 영감을 주는 것들, 글 쓰는 일상 뭐 그런 것들을 소소하게 올리려고 하는데, 전에 올리던 글들과는 테마가 사뭇 달라서 콩에게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콩이 종종 저를 지켜봐 준다는 생각을 하니 일단 뭐든 올릴 용기가 생겨요. 이렇게 오래 기다려주고 이해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또 소식 전할게요! (브런치는 이모티콘이 안 써지나 봐요, 하트)

작가의 이전글 스마트기기 공포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