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채널을 우연히 돌리다 새로운 시즌을 막 시작한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춤과 노래에 재능 있는 어린 참가자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소속사에 캐스팅되기 위해 저마다의 끼를 맘껏 분출해내고 있었다. 보통 10대 후반 학생들이 많았고, 열 살 남짓의 아주 어린 참가자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엄청난 노래실력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참가자들의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려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합격이 간절한 아이들은 심사위원들의 매서운 심사평 앞에서 한껏 주눅 들어 있었다. 열심히 하겠다고, 뽑아만 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참으로 애처로워 보였다. 특히 지난 시즌 좋은 평을 받았으나 불운으로 탈락했던 참가자가 이번 시즌에 재출전하면서 전보다 나아진 실력이 보이지 않을 때면, 심사위원들은 1년(혹은 2~3년)이란 시간 동안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열심히 연습한 것이 맞는지 질책했다. 아이들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애써 울지 않으려 참아보는,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그 어린아이들의 얼굴은 칭찬을 듣지 못해 떼를 쓰는 철없는 아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열심히 준비했는데, 도대체 지금보다 뭘 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나...’ 답답함에 본인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눈물 어린 얼굴이었다. 노력. 이게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만큼 성실하고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국민은 드물다.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34개국 중 2위이다. 1위인 멕시코는 주 6일제라고 하니, 사실상 주 5일제를 채택한 나머지 33개국 중 1위인 셈이다. 물론 노동시간과 업무 성실함이 비례한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타국 국민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월등히 많은 시간을 가정보다 회사 업무에 쏟고 있는 건 확실하다.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엄청난 노동량이 큰 밑거름이 되었단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란 구호 아래 도시에서부터 시골마을까지 모든 국민이 협심하여 경제발전을 위해 달렸다. ‘열심히만 일하면 승진도 하고, 넓은 집으로 옮기고, 차도 사고,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꾸며 내 가족, 내 국가를 위해 너도 나도 열심히 일했다. 행여나 남들보다 못한 결과를 받게 될 때면 그 책임은 모두 내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렸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고, 명문대에 가지 못했고,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 당시엔 경제성장기의 한가운데였기 때문에 저 말이 어느 정도는 통했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 마련도 가능했고, 어느 정도 부의 축적도 가능했다. 공부는 가장 확실한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나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어릴 적 영웅들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꿈을 향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자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당하게 착복한 재력을 등에 업은 정유라와 같은 기득권층 아이들은 학교를 단 17일만 출석해도 교내 우등생으로 뽑혔고, 명문대에 합격했으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받았다. 생리대조차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학원은커녕 문제집 1권을 사는 것조차 사치인 학생들에게 그들은 ‘네가 처한 현실은 너 혹은 네 부모님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더럽게 모은) 돈도 능력의 일부라면서 말이다. 정말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인 걸까?
직장에선 어떠한가?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열심히 일하면 승진을 거듭해서 언젠가는 임원의 자리에 오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연장근무수당 없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일하기를 원하고, 법이 정한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 데에도 눈치를 준다. 쉼 없이 계속 일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겐 어리다는 이유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고, 심지어 회사 성장에 기여한 노력의 대가로 받는 상여금을 돈이 아닌 ‘김치’로 주는 회사도 있다(사실 상여금조차 없는 회사가 대다수이지만). 내가 노력만 한다면 꿈꾸는 미래에 다가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러려고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살자’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노년층은 퇴직 후의 삶이 두려워서, 중장년층은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고등학생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자기계발 서적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토익학원과 입시 학원, 노량진 고시학원의 불빛은 새벽이 되어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의 독후감이나 일기의 마무리조차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로 끝난다. 이쯤 되면 한국인 모두가 단체로 ‘열심히’ 강박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다.
이젠 솔직하게 인정하자.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노력한 만큼 성공을 쟁취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은 힘들고, 일한 만큼의 돈을 받지도 못하며, 열심히 일해도 전세금조차 마련하기 힘들다. 갑과 을은 너무도 명확히 구분되어있고, 을은 갑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다. 절망적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염세적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어차피 열심히 살아봤자 결국 노년은 치킨집 사장님 아니면 아사(餓死)'일뿐이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도 없다. 그럴수록 우리가 그동안 바친 노력은 폄하되어 비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기득권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가진 자들이 대다수의 못 가진 자들에게 바라는 태도일 것이다. 저항하지 말고 그냥 포기하라고,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말하고 싶다. '열심히 살다'의 반대말이 '실패' 혹은 '게으름'이라고 암묵적으로 통용되어온 사회적 시선이 바뀌길 바란다. 이미 한국인들의 뇌에 깊숙이 박혀버린 이러한 잘못된 인식에 균열이 생기길 원한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지 못한 원인을 노력의 부족이라고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않길 바라며, 주위에 그런 이들이 있다면 정당하게 질책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어릴 적 어른들이 종종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기 쓰레기 청소하는 아저씨처럼 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하 발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창피했던 나의 행동이 결국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태생되었단 사실을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이러한 개개인의 작은 변화가 모여야만 거대한 인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는 이미 천박한 자본주의의 병폐가 사회 깊숙이 뿌리내려 힘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잡초 하나가 견고하다 생각했던 시멘트 벽을 부수고 나오 듯, 바뀌기 힘들다 생각했던 고정관념들도 생각 외로 쉽게 와장창 깨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력' 혹은 '열심히 하다'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개개인의 인생에 맞게 세운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 이는 또한 추상적 개념이기도 해서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지도 않는다(물론 점수로 나타나는 시험의 경우엔 점수로 결과가 드러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노력이 다른 성공한 이의 것보다 부족했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며, 스스로 노력이 부족했다며 격하시켜 자존감을 깎을 필요도 없다. 툭하면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도 말하지 말자. 노력이 무슨 동네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