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방이 싫어요

한국 회식문화에 대한 고찰

by 유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회식 2차 코스=노래방은 당연한 공식이 되었다. 흥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한국에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잘 부르는 사람도 참 많다. 각 방송사마다 노래자랑이며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해도 어디서 그렇게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오는지 참 신기하다.


하지만 나는 음주가무의 민족인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싫다. 그렇기에 노래방은 더더욱 격렬하게 싫어한다. 오해하지 말라. 남이 부르는 걸 즐겁게 박수쳐주고 듣는 건 좋아하니. 단지 내가 누군가의 앞에 나서서 억지로 부르는게 싫을 뿐이다. 타고나길 흥이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조용한 음악을 들어야지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고,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니는 것 보다 릴렉스된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게다가 누군가의 주목도 받기 싫다. 노래라도 잘 부르면 모르겠는데 노래도 못 부른다. 평소에 듣는 곡이라곤 내가 따라부를 수 없는 곡들이 대부분이고(피아노 연주곡, 슬픈 발라드, 남자들 노래, 기타 등등...) 남이 신청한 노래가 나올때 억지로 마이크를 넘겨받아 부를 때면 꼭 삑사리가 난다. 그럴 때마다 창피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속으로 주문을 건다. 제발 서비스좀 넣지 마요 아줌마!!!


노래방은 자아도취 되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어두컴컴하고 조명도 있고 마이크에 에코도 있으니, 다들 본인 노래에 본인이 도취되어 부른다. 반면 나는 자뻑에 도취되어서 살아본적이 없다. 소위 '셀프뽕'이라고 하지. 셀프뽕 없이 너무 맨 정신에 남들 앞에서 삑사리 나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시선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게 오히려 트라우마 잔상으로 남아 후에 계속 날 괴롭힌다. 무엇보다도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분위기가 '촤악' 가라앉는 그 어색한 공기도 싫고, 그게 싫어서 억지로 "애써" 신난 척 하는 내 모습이 비참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에게 노래방의 정의를 내려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러가는 장소가 아니라 극강의 스트레스를 주는 장소라고. 보통수준의 100배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가늠이 될까?


사람들이 그러더라. 친구들끼리 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사람들이랑 노래방 가는걸 누가 좋아하냐고. 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가는거라고. 난 미안하지만 친구들끼리도 노래방을 가본 적이 드물거니와 그 조차도 선호하지 않는다.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 나의 노래방 기피증은 시작된 것 같다. 그 때 그 잔상이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기강이 쎄다고 소문난 방송부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 하자 마자 2학년 3학년 언니들과 종종 회식하면 노래방엘 갔다. 그 전까지 나에게 노래방이란 명절 때 친척들과 흥겹게 놀았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한 순간에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다.


"신입이니까 노래좀 불러봐. 춤좀 춰봐. 그거 밖에 못해?"


언니들 앞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는 게 정말이지 싫었다. 발라드 선곡하면 눈치줬고, 언니들이 좋아할만 한 노래를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꼭 마지막 곡은 '단합'을 의미하거나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을 골라야했다. 예를 들면 이문세의 붉은노을 같은... 매번 똑같을 수 없으니 항상 춤도 노래도 연구해야 했다. 스트레스였고 수치스러웠다. 미리 사회생활을 경험해서 좋았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때 악습을 먼저 배울 필욘 없었다. 아무튼 난 그때의 안좋은 기억으로 노래방을 기피하게 됐다. 대학에선 노래방을 일절 가지 않았고, 운 좋게도 회사에 들어와서도 노래방에 간 적이 손에 꼽는다.


어제 격하게 분노한 건 싫어하는 노래방에 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제 그 분위기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보고 있는 게 어려웠다. 일단 아이도 있는 유부남 상사들과 미혼의 어린 여직원들이 회식을 하는 그 자체도 싫었다. 왜 꼭 회식엔 '여성'이 있어야 하고, 그 여성은 본인 동료들이 아닌 '어린 비서'여야 하는가? 게다가 '미혼'으로.


술 마시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앉아서 그들 무용담에 맞장구 쳐주는 수준의 대화만 나눈다. "그 00 파트장님 참 훌륭하시던데요~ 00건 성공적으로 잘 마치셔서 기분 좋으시죠? 고생하셨어요~" 등등. 가식적인 이런 대화를 나눠야만 친밀감이 생긴다 생각하는 것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2차로 노래방을 가더니 서로 막 손을 붙잡고 노래를 부르질 않나, 사랑의 총알을 쏴대질 않나....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그들 앞에서 소녀시대며 트와이스며 걸그룹 노래를 춤춰가며 불러야 하는게 마치 (비약해서 말하는 거지만) 기쁨조가 된 기분이 들어 별로다. 지들 스트레스 푸는데 우리가 동원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너무 어거지로 엮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 내 기분은 딱 그랬다. 노리개 된 기분. 싫다는 사람한테 노래 안불러도 된다고 그냥 와서 박수만 치면 된다고 해놓고, 진짜 노래 안부르고 앉아있으니 정말 한 곡도 안부를꺼냐, 나와서 쩜프쩜프 안할꺼냐? 재촉해대는게 더 화가났다. 말이 다르잖아 이놈들아? 선배와 후배 비서들에게 미안했지만 난 무언의 항의로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엉덩이도 의자에서 떼지 않았고, 박수만 열심히 성의있게 쳤다. 노래는 끝까지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술에 살짝 취한듯이 눈이 조금 풀린 한 상사분이 와서 그러더라. '이게 참 강요하면 안되는건데. 참 사회생활이란게 그래요. 어려워요 그쵸?' 빙빙 돌려말하는거 같은데 요점을 단번에 파악했다. '너 그렇게 사회생활하면 안되는거야.'는 말이었겠지. 그러나 모르는 척, 순수한 척 눈꺼풀을 껌뻑껌뻑거리며 대답했다 "네, 사회생활 참 힘드네요. ^ ^ "


노래방을 강요하는 사회, 부르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가서 안부른다고 사회생활 못한다고 눈치 주는 한국 사람들. 자영업자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제는 9시 넘어서까지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노래방도, 술집도, 고깃집도 참 미웠다. 오후 7시가 넘어가면 저마다 문을 닫고 암흑의 세계가 되는 북유럽 국가들이 부러웠다. 이럴땐 정말이지 한국을 떠나고 싶다.


여러분들. 밤이 되면 집에가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자야해요. 그게 정상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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