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존감 점수는 0점입니다

by 유연

"언니 이거 한번 해봐"

동생 SJ가 카톡으로 웬 링크 하나를 보냈다. 일명 자존감 테스트라는데 영어 약자로 SEI라고 쓰여 있으니 왠지 모르게 공신력 있는 테스트인 것만 같아 신뢰감이 간다. 클릭해서 들어가니 대문짝만 한 글씨로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라고 쓰여있다. '나를 안 사랑하는 사람도 있나?' 코웃음치고 스크롤바를 내렸다. 평소 같았으면 굳이 저런 걸 왜 하나? 싶었을 거다. 그런데 요즘 내 상태에 빨간불 신호가 들어왔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재미 반 관심 반으로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좋게 나오면 좋은 거고 낮은 점수가 나오면...? 에이... 낮은 점수가 나올 리가 있나? 하는 반신 반의의 마음으로.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 자기 자신을 가치 있고 긍정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한 부인은 누군가 옷이 참 예쁘네요 라고 칭찬하니, 당황하여 아니에요,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옷이에요. 벌써 산 지 2년이 넘은 건데요 라고 옷을 비하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신 치료를 받은 후 그녀는 누군가 자기를 칭찬하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고마워요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자존감이 높아진 증거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응????? 저 예시는 내가 하는 행동이랑 비슷한데...' 처음부터 충격이다. 나는 내가 받는 칭찬이 너무 오글거린다. 낯 부끄럽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 몸이 어쩔 줄 몰라 베베 꼬인다. 누군가 '어머 예쁘다~'라고 칭찬해줄 때 "응 맞아. 이거 되게 예쁘지??"라고 말하면 왠지 재수 없어 보일 것 같다. 자랑하는 것 같고, 상대방에게 박탈감을 줄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기준은 간단하다. 남이 그렇게 행동했을 때 내가 그렇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 유독 자랑을 즐겨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와 대화하는 게 난 유독 불편했다. 어떻게 대화가 불편할 수 있냐고? 어휴..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 일단 그녀는 모든 대화의 중심이 그녀여야만 한다. 그 어떤 이야기도 종국엔 자신의 자랑으로 끝낸다. 남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안중에 없고, 남이 자랑 얘기를 하려 하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호응 따윈 없다. 참 신기한 능력이다. 아무튼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자아도취형 인간으로 살고 싶진 않다고. 적어도 겸손과 자중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칭찬을 받으면 사양하는 게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라고도 생각했다. 난 동양사람이니까, 그것도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유교사상에 길들여진 사람이니까. 겸손은 미덕을 넘어서 배려라고 배웠으니깐.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물음 하나하나 마다 정곡을 찌른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실수나 약점에 대해 스스로를 탓한다. YES

나는 부끄러움, 책망, 죄책감, 후회로부터 자유롭다. YES


회사 생활을 하며 만났던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결심한 게 있다. '나는 항상 옳고, 나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우겨대는 그들. 진절머리가 났다. 엘리트 옆에서 일을 하면 그들의 부지런함과 똑 부러짐을 배울 것 같아서 이 회사를 택했다. 예전 회사에선 매너나 배려는 차치하고 일단 막무가내로 바닥에 드러누워 공짜 선물 달라고 떼쓰며 크게 소리치면 장땡인 사람들이 싫었다. 또 대기업의 대리 혹은 과장이란 이유로 마치 본인이 대단한 사람인 것 마냥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이 득실거렸다. 그런 게 싫어서 배웠다 하는 엘리트 집단은 좀 다르겠지란 마음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또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우겨대더라. 그래서 결심했다. 난 저런 인간은 되지 않으리.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늘 자성하며 살리라. 항상 습관적으로 자기검열을 했다. 잘난 것들끼리 모여서 잘난 체 하는 모습이 보기 역겨웠기에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런 게 그게 너무 혹독했나 보다. 그게 자존 감하고 연결될 줄은 몰랐다.


그랬다. 난 항상 남에게 그랬듯 나에게도 혹독했다. 작은 성취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했다. 외모도 사는 것도, 내 지식수준도 성에 차지 않았다. 항상 수준 이하였고 늘 누군가를 동경했다. 반면 남자 친구는 매사에 자신감에 넘쳐나 보였다.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넌 너무 너 스스로를 과대평가 해'라고 살벌한 말로 기를 죽이려 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나랑 같은 대학에 같은 학과를 졸업했고, 학점도 내가 더 높고, 취업도 내가 먼저 더 잘 했는데... 뭐 그리 잘나 보이지도 않고 솔직히 나랑 고만 고만한 수준인 것 같은데, 늘 나보다 한 수 위인 것처럼 행동해서 꼴 보기 싫을 때도 많았다. 서로 보이지 않는 은근한 기싸움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싸움은 어쩌면 나 혼자 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싸움 상대는 싸운다는 생각도 안 하는데 나 혼자 열 내고 있는 상황이었던 거다.


생각해보니 난 남자 친구 앞에서도 난 나 스스로를 칭찬해 본 적이 없다. 잠을 많이 자면 게으르다고,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잉여스럽다고, 이것 저것 배우러 다니면 한 가지를 꾸준히 못하는 성격이라고, 생각은 많은데 실천은 안 하고 불평만 하는 프로불편러라고 스스로 깎아내렸다. 반대로 생각하는 게 오히려 불편했다. 여러 가지를 배우러 다니니 남들보다 할 수 있는 게 많고, 생각이 많은 건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거고,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다음을 위한 쉼이 필요한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난 늘 내가 불만스러웠나 보다.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자아도취 되어서 칭찬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인지 자꾸 그의 입을 통해 칭찬을 받으려 집착한다. 칭찬의 말을 안 해주면 '얘가 날 본인보다 한 단계 밑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라고 또 자존감 깎이는 생각을 했다. 그는 늘 똑같이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했는데, 난 그 입바른 말 한마디에 집착했다. 그게 고치려 노력해봤는데 잘 안됐다. 지금도 잘 안된다. 태어나길 예민한 센서를 가지고 태어나서 스스로의 부족한 점이 너무도 잘 보이는데 어떻게 내가 셀프 뽕에 취해 살 수 있단 말인가?


"언니 몇 점 나왔어?? 궁금 궁금!"


동생이 링크를 보내주고 얼마 있다 바로 물었다. 설마 했던 내 자존감 점수는 빵점. "나 자존감 빵점이다! 우하하하하" 하고 카톡을 보냈다. 'ㅋㅋㅋ'이라 보냈지만 사실 웃음은 안 났다. "헐. 언니가 빵점이라고? 말도 안 돼!" 동생이 놀란 눈치다. 예상을 비껴 나간 건가? 그것도 참 신기하네.


동생은 45점이란다. 역시 제 멋대로 사는 것 같아 보였던 동생은 자존감이 충만한 아이 었나 보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그녀는 아무 고민(혹은 죄책감) 없이 일단 지르고 본다. 부모님에게도, 회사 상사에게도.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니? 회사생활 안 해본 티 내지 마'라고 조언해줬는데 오히려 나처럼 맘고생 안 하고 더 편하게 지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동생 영혼을 좀 가져오고 싶단 생각도 했다. 그녀가 "괜찮아 언니. 내 친구 OO은 마이너스 35점이래ㅎㅎㅎㅎ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잖아"라며 대답했다. 위로의 의미로 던진 그 말이 비수로 꽂혔다. 내가 아는 동생 친구 OO이?? 걘 정말로 자존감 바닥인 아이란 말이다... 나 걔랑 비교하지 말라고!! 나 그 정도 아니야!!


그 충격파로 엊그제 <자존감 수업> 책을 주문했다. 동생이 비웃었다. "자존감 높이라니깐 또 책 샀네. 도대체 저 많은 책은 언제 다 읽을 거야~~"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그녀 눈에 많은 책을 읽고도 자존감이 바닥인 언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생 말도 맞다. 자존감이 어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었나. 그래도 왠지 모르게 그 안에 비법이 있을 것만 같아서 주문했다. 그걸 읽고 나면 자존감 지수가 적어도 45점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백일몽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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