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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l 07. 2017

박열은 어디가고 후미코만 남았네

영화 <박열> 관람후기

                                                                                                               

[개인적인 의견이니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


분명 영화 제목은 <박열>인데 그의 연인 후미코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박열>에서 박열이 보이지 않는다. 박열이 자꾸 시그널의 박해영 경위님이 떠오르는건 배우 이제훈의 특유 말투 때문인걸까? 그가 어느 역할에도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대사의 80%가 일본어인데, 일본어 마저도 박해영 경위님처럼 읊어대니... 처음엔 신선했던 배우였는데 안타깝게도 점점 그의 연기가 기대가 되지 않는다. (말투를 좀 바꿔보는게 어떨런지....)

영화 <아가씨>에서 발견한 보물이 배우 김태리였다면, 영화 <박열>에선 단연코 배우 최희서다. 잠재력도 어마어마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과 순간 집중력, 인물에 빠져드는 능력이 엄청난 것 같다. 올해 유력 여자 신인배우상 후보로 점치고 싶다. (배우에게 빠질 수 없는 마스크도 너무 매력적이다! 부러워 힝!!) 신인임에도 기운으로 이제훈을 압도함은 물론 그를 더 넘어선 것 같다. 뱉어내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후미코와 혼연일체 되기 위해 그녀가 취했던 수많은 노력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 마지막 촬영 당시 그녀에게 '이제 사람들은 후미코를 최희서로 기억할꺼야'라는 말을 해주었다는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최희서 배우가 밟아 나갈 필모그래피가 기대된다.

영화 <박열>은 실화에 근거한 영화로, 깔끔 담백하다.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실화에 근거한 영화들이 종종 내용이 부실하거나, 전개가 어색하거나, 관객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려는 인위적인 노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는 않다. 흔히 말하는 '연기 구멍'도 없고, 스토리도 탄탄하고, 너무 앞서나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방이 없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한방'이 필요한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열>이란 역할에 배우 이제훈씨 대신 다른 더 톡톡 튀는 배우를 맡게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극 중에서 미친놈 역할로 나오는데 얼굴을 보면 너무 반듯하게 자란 부잣집 아드님이 미친놈 행세를 하는 것 같다. 정우성에게 바보 역할이 안어울렸던 것 처럼 말이다.

포스터를 보면 글씨체도 그렇고, 배우 이제훈씨의 익살스러운 표정도 그렇고... 이 영화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통쾌함' 인 것 같은데 그런 기분을 받지 못했다. 박열이 일본 사법부를 쥐락펴락하는 장면에서 분명 통쾌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분명 빈틈없는 스토리였는데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분명히 일본에 항거한 대한민국 국민의 이야기인데 왜 마구 뭉클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무적자 후미코에 감정이입이 된 건 나 뿐이었을까?

매력적인 소재였음에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흠도 없었던 무난한 영화였다.

P.S.

이 영화를 반일 매커니즘으로만 바라보기 보다는 아나키즘이란 시각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한 '권력'이라는 게 꼭 필요한 것인지, 권력이 우리 삶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서 현 시대에 비추어 생각해면 좋겠다. 박열과 후미코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에 항거한 인물들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자면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짓밟는 거대 기득권층을 향해 반항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 점에 주목해서 본다면 더더욱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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