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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Aug 22. 2017

조금만 덜 감성적이었다면

영화 <더 테이블> 후기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꼭 뮤직비디오 같다'였다. 여심을 흔드는 영상미와 감수성을 건드리는 BGM은 김종관 감독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한국영화감독 중 이런 영상미 쪽으론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영화는 2004년에 나온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다. 러닝타임이 6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단편 영화인데, 작품 소개를 보니 '들킬 듯 말 듯 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간결한 클로즈 업으로 화면 가득 담아낸 에세이 같은 영화'라고 쓰여 있다. 저 문장에서 '소녀'를 '네 여성'으로 바꿔보니 영화 <더 테이블>을 소개하는 문장으로 변했다. 한결같이 김종관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가 낸 새로운 작품 또한 비슷했다. 클로즈업 화면으로 가득 담아낸 감성 에세이 같은 영화.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배우 정유미가 등장한다는 것! 어쩌면 그녀는 김종관 감독의 페르소나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에 함께 간 지인의 말에 따르면 단편영화계의 샛별처럼 등장한 김종관 감독을 보고 사람들은 한국의 이와이 슈운지가 될지도 모른단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 테이블> 포스터를 보며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떠올랐고,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도 생각났다. 뽀얀 화면, 잔잔한 극의 전개, 클로즈업 샷, 조용한 BGM, 남자 배우들보다 여자 배우들이 돋보이게 되는 영상미까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김종관 감독에겐 긴 러닝타임은 극복할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인 건가? 이후 개봉한 <조금만 더 가까이>(2010)도 그렇고 이번에 개봉한 <더 테이블>(2017)도 그렇다. 아직도 단편영화에서 길들인 습관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그 습관으로 장편영화를 만들다 보니 생겨나는 한계가 자꾸만 보였다. 단편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그의 장점이 장편에서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다.





단출해서 아쉬운 스토리


<더 테이블>은 어느 동네 카페의 테이블에 하루 동안 다녀간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옴니버스식 영화이지만 4가지 스토리가 교차되지 않고 시간순으로 보인다. 우리가 카페에 가면 한두 시간 잠시 머물다 가듯 영화 속 인물들도 그렇다.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려 하는 순간,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그리도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단편이었다면 시간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싶지만, 장편영화인데도 이 정도의 깊이로만 인물을 다룬 건 참으로 아쉽다. 매력적인 여배우의 머리카락 한가닥만 보고 나온 기분이다. 그래서 스토리에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옴니버스 영화라면 각각의 스토리가 개별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교차적으로 모두 연결되어야 함에도, 이 영화는 그저 4개의 단편을 시간 순으로 쭈욱 이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공간적 부분 외에 그 어떤 공통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배우를 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포스터에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배우들의 얼굴을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여배우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서 그랬으리라 싶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여배우들이 등장하기에 홍보팀에선 당연히 저렇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라 이해해본다(포스터마저 너무 예쁘다. 여성들의 취향 저격 스타일!). 하지만-홍보팀의 전략인지 모르겠으나-여배우를 위한 영화라고 홍보한 그 의도가 궁금하다. 여배우들이 아름답게 찍힌 영화는 맞다. 하지만 스토리 상 여배우를 위주로 구성된 이야기는 없었다. 조금 당찬 여성상(?)을 보여주었을 뿐. 그에 반해 남자 배우들은 한없이 찌질한 모습으로 나온다. 배우가 된 전 여자 친구를 보기 위해 회사 직원들을 몰래 데려온 남자, 돈 때문에 여자와 헤어지면서도 쿨한 척하는 남자, 썸 타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세계여행을 가버린 남자. 홍상수 영화의 오마주인가?




답답한 화면, 클로즈업은 이제 그만


아리따운 여배우를 클로즈업한 화면은 예쁘다. 특히 스틸샷으로 남겼을 때 정말 예쁘다. 뒷 배경이 날아가고 인물에만 집중되는 클로즈업 샷을 난 참 좋아한다. 단, 사진일 때만. 영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한 가지 프레임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들이 모두 클로즈업 화면으로 구성되는 게 본인만의 색채라 하기엔 아마추어스럽고 답답해 보인다. 게다가 뒤통수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니... 프레임의 변화가 없으니까 러닝타임이 길어질수록 지루해진다. 장면 전환은 어떤가. 극의 흐름이 뚝뚝 끊길 만큼 서툴다. (연기가 극도로 어색했던) 카페 주인이 등장하는 장면을 극의 전환용으로 꼭 넣어야 했다면 조금 더 잘 찍을 순 없었나. 서투르고 아마추어스럽고... 그래서 아쉽다. 스토리가 잔잔한데 화면마저 잔잔하니 곱절로 지루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기대를.


김종관 감독의 다음 작품에서는 과거에 정체되지 않고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다. 본인의 색깔을 버리고 상업 영화스러워지란 말은 아니다. 그의 색감과 감성을 간직하면서도 충분히 상업영화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훌륭한 감독일 거라 믿는다. 만약 각 에피소드가 단편적인 소개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깊게 전개되었더라면, 혹은 단순히 시간적 흐름으로 진행시키기보단 조금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시켰다면... 등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이란 소재를 이렇게 아름답고 여성스럽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을 가진 한국 영화감독이 많지 않기에 앞으로 나올 그의 신작을 기대해보고 싶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이번과 같이 단편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보인다면 아마도 영영 외면하게 되지 않을까? 더 이상은 포스터와 스틸샷을 보고 혹해서 예매했다 실망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기대한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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