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도 경청도 없는 사회

더 나은 대한민국 만들기

by 유연

대화의 기본은 공감과 경청이다.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생각도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고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화가 기본이 되는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토론을 경쟁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언론에서 자주 보였던 상대방을 비방하고 논리 없이 떠들어대는 TV토론 때문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모 케이블 방송사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배틀토론'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토론이란 상대방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전쟁터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어린 학생들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자주보았던 "짝궁과 함께 자유롭게 토론해봅시다"란 문장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분명 그 시절엔 짝꿍의 의견도 듣고, 나의 의견도 얘기하고, 그렇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 흐뭇한 기억이 언제부터 변질이 된걸까.


대학 토론수업 시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의견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교수님의 시선을 피하려 했던 소심한 학생이었다. 토론이 무서웠다. 내 의견을 피력해봤자 목소리 큰 놈이 우겨대면 끝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학생들은 싸움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학점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토론 상대방을 몰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겠지. '내 생각이 옳아. 내 주장이 옳아. 너는 틀려. 그러니 너는 내 의견에 동조해야 해.' 이런 친구들과는 대화를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내 의견을 들을 마음조차 없었으니까. 그럼 나는 다시 입을 닫는다. 괜한 불화를 만들고 싶지도 않고, 불편해지는 분위기도 싫다. 그냥 입 아프고 피곤하니까 싸우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래 니 말이 맞아. 어어어~'이렇게 끝낸다. 그러나 그 땐 몰랐다. 이럴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고 더 수구적인 자세가 되어버린 다는 걸.


외면하고 싶었던 토론. 그러나 취업을 위해서 토론 연습은 필요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토론 면접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찬성/반대/사회자 역할을 나눠 맡은 후, 자신의 주장과 탄탄한 근거를 만든 후 5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보여주어야 하는 꽤나 어려운 관문. 취업 코치는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는 독불장군처럼 내 의견만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기업이 다른 이의 의견도 경청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취업이라는 바늘구멍보다 통과가 어렵다는 이 관문에서 이제 최종 문턱에 다다른 지원자들은 옆 지원자를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배려, 경청'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지 않은가? 사실 지원자들은 잘못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경쟁 토론만 보여주고 가르쳐놓은 이 사회가 문제인 것이지.


토론은 전쟁이 아니다. 토론은 배틀이 아니다. 토론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양한 의견을 듣고, 다름을 인정하는 건설적인 행위이다. 이 지구 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단 하나의 의견만 가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토론은 지식과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고, 경청과 배려심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에서 토론의 싹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아 보인다. 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의 말씀을 수첩에 받아 적기 급급하고, 대통령의 말씀에 자유롭게 새로운 의견을 던지는 이는 단 한명도 없다. 고개는 모두 푹 숙여있고 아이컨텍은 커녕 수첩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과연 모두가 대통령의 의견에 동조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괜히 분란을 만들어 봤자 내 일신이 피곤해 지니까. 괜히 일을 만들어서 바빠지는 것이 싫으니까. 괜히 대통령에게 미운털 박히기 싫으니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일테다.


요새 대통령께서 민심을 읽지 못하는 말씀을 자주 내뱉으신다.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서는 '기업의 무책임, 도덕적 해이는 정부가 책임져줄 수 없다'라며 한 나라의 수장이 아닌 남의 나라 이야기 하듯 말씀을 하시더니, 어제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좌절하는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발언을 노인의 날 기념 오찬에서 하셨단다. 세계가 알아주는 대한민국을 젊은이들은 자랑스러워 하지 않고 헬조선 따위의 용어를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시킨다고 했다(이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하신 말씀이다). 다수의 국회의원과 국민, 심지어 보수 언론까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우병우 민정수석은 끝내 개각 때 내쳐지지 않았다. 청문회 때 온갖 부패가 탄로난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국회에서 부적격 의견을 내었음에도 대통령은 그 둘에게 직접 임명장을 수여했다. 눈과 귀를 닫은 채 오로지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소통이란 무엇이고, 대화란 무엇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불통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은 것에 대해 불쾌함만 내비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째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주위에 묻고, 그리고 주위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통령을 이해해보려 한다. 소통과 대화가 무엇인지 배워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너무 높은 위치에 있었다. 대통령의 딸이었기에 모두가 그녀의 말에 복종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애국심'을 배웠지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지난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아주 잠시 했었으나 이 또한 허사였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한국인이 비단 대통령 뿐이랴? 부하직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의 한국 기업들, 청년들의 의견은 '네가 뭘 알아'라며 묵살시켜버리는 어른들, 교통사고를 내고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길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 심지어 힘없는 친구를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까지... 소통과 배려, 입장바꿔 생각해보는 능력의 부족이 만들어 낸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모습들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만들어 낸 경쟁사회가 낳은 부작용. 이젠 메스를 들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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