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 목소리를 던지는 여정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by 유연

아주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이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달까. 누군가에겐 한량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 글을 쓴다는 행위가 내 눈에는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쓴다는 행위는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서평에 도전했던 날이 떠오른다. 선정 도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는데, 방대한 양 때문에 읽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서평을 쓰는 건 더욱 고통스러웠다. 고작 A4용지 1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완성을 시키기까지 장장 1주일이나 걸렸다.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고… 아예 진도가 나가지 않은 날도 많았다. 산고의 고통에 비유할 건 아니지만, 나에겐 마치 출산의 경험처럼 느껴졌다(비록 아직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 미혼녀이지만).



한 번, 두 번… 그렇게 1달에 1번 꼴로 1년 반동안 서평을 썼다. 매달 한 번 동호회 회원이 모이는 날짜가 자체 마감일이었다. 마감 있는 글쓰기는 한 줄 쓰는 것도 벅차했던 나를 자기 검열의 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일단 생각 나는 대로 무작정 써 내려가니 저절로 분량에 대한 두려움 또한 사라졌다. 답답함의 해소도 경험했다. 가슴에 담아만 두었던 무형의 생각들을 글자로 쏟아내니 쓰면 쓸수록 생각이 정돈되어 밤에 잠을 설치는 날도 줄어들었다. 정말이지 이 경험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유레카!



이 참에 100일을 연속해서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는 일에도 도전했다. 작심삼일의 아이콘인 나였지만 이번엔 다행히도 함께 도전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물론 100일간 쓴 글들을 보면 모두 퇴고를 거치지 못한 부끄러운 초고일 뿐이다. 하지만 어설프더라도 지난 100일간 꾸준히 해왔고 그 기간 동안 난 분명히 성장했다. 실력적으로? 글쎄... 분명한 건 한 인간으로서는 크게 변했다. 늘 걱정과 생각이 많아 불안하고 초조했던 내가 차분해지고 편안해졌다. 한 번 성취감을 느끼니 그 어떤 것에도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글쓰기를 통해 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해방감, 충만함, 성취감 등 그 모든 것들을 맛보았다. 글쓰기는 꼭 마라톤 같다. 뛰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파이널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느끼는 환희와 감동, 그리고 어제보다 더 발전한 내 모습을 보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직접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트럼보> 스틸사진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 지난한 과정은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텨서 인간이 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맘먹는다고 쉽게 되지 않는다. 유혹에 넘어가면서도 우리는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낸다. 결국 포기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 뿐이지만. 귀찮아서 혹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딱히 피해 입을 일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지 않듯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질타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는 것뿐이다. 솔직해지자.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내며 나와의 약속을 깨트린 적… 사실 많지 않은가?



고생길 끝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함. 그 맛이 궁금하다면 고행이 수반되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조급해하지 말자. 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5년? 10년? 그 간의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쏟아부은 시간만큼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도 슬퍼하지 말길 바란다. 투자한 시간만큼 분명히 성장해있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테니. 행여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유명 작가들이 남긴 주옥같은 문장을 다시 읽어보자. 은유 작가님의 신간 <쓰기의 말들>에는 우리를 방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명문장들이 모여 있다. 글을 왜 써야 하는지 이유를 잃고 방황했던 나 또한 그녀가 찾아내어 소개해준 문장들을 읽으며 깨달은 바가 크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나만의 메시지를 찾으세요

은유 작가님의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며칠 째 머릿속을 맴도는 걸 보니 내가 필요로 했던 문장이었음에 틀림없다. 세상을 항해하고 싶은 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 것들을 찾고 싶다. 내 이야기이지만 남들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 중 한 과정이지 않을까. 게다가 깊은 생각에 빠지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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