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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07. 2016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

어학연수 시절 만난 캐나다인 친구와 대화를 나눴던 게 문득 생각이 난다. 각자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브리짓 존스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흠칫 놀라 했던 그의 표정... 잊을 수 없다. "걘 늙었고 뚱뚱하고 푼수잖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그 팩트를 부정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내 눈에 브리짓은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반박했다. "그래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녀는 너무 사랑스럽고 러블리한 걸!" 순간의 정적. 그리고 이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브리짓을 좋아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리짓을 기다리는 팬들이 전 세계에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펜으로 일기를 쓰던 그녀가 이젠 아이패드로 일기를 쓴다. 세월이 흐른만큼 브리짓도, 브리짓의 일기도 변했다



Bridget is back!!!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개봉 예정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꺅!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안타깝게도 두 번의 전작에서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던 휴 그랜트가 참여하지 않았지만, 르네 젤위거와 콜린 퍼스의 조합을 12년 만에 본다는 사실 자체로 흥분되었다. 게다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시리즈에서 눈여겨보았던 패트릭 뎀시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다고 하니...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2004년에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은 후속 편이 전편보다 나을 수 없다는 말을 여실히 보여준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스토리의 짜임새는 엉성하다 못해 개연성이 떨어졌고, 사랑스러운 브리짓을 넘어 구제불능의 노처녀로 만들어 버렸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표방했지만 코미디에 집중하려다 보니 둘 다 잃어버렸다. 마크 다아시와 브리짓의 해피엔딩 키스신으로 끝났던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2001)의 그 후 이야기를 기다렸던 수많은 팬들에게 실망만 안겼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르고 또 하나의 후속 편이 드디어 우리 곁에 왔다. 이번엔 1편에서 함께 했던 샤론 맥과이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을 만든 소설가 헬렌 필딩도 함께 했다. 2편에 실망했던 팬들이라면 3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휴그랜트의 부재를 아주 잘 메워준 페트릭 뎀시. 지덕체에 재력까지 고루갖춘 이 남자를 어떻게 밀어낼 수 있으랴!



브리짓 존스 시리즈 중 가장 유쾌한 영화

아마도 브리짓 존스 시리즈 3편 중 가장 유머러스한 영화가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이지 않을까? 과묵하기만 하던 콜린 퍼스가 몸개그를 하고,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환히 웃는다(그 것도 자주). 젠틀한 영국 신사였던 그가 잭 퀀트(페트릭 뎀시)를 질투하는 눈빛을 보내며 심지어 신경전도 벌인다. 영국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브리티시 유머도 또 하나의 재미! 감동과 유머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감독의 센스에 박수를 보낸다. 2시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브리짓의 아이가 두 남자 중 누가 될지 맞추는 긴장감은 극 전반을 관통하는 쏠쏠한 재미이다. 실제로 시나리오에 적힌 엔딩 버전이 2가지여서 콜린 퍼스와 페트릭 뎀시가 번갈아 가며 촬영했다고 하니, 두 남자 주인공의 연기에 진심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응답하라> 시리즈의 영국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여주인공이 노처녀인 부분은 빼고).



만삭의 임산부인데도 혼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거뜬히 들고다니는 우리의 독립적인 여성, 브리짓!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브리짓의 성장 스토리

사실 이 영화는 여성의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신데렐라 스토리라 볼 수도 있다(그런 면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한국 드라마와도 닮아있다). 변변치 않은 직업에 뚱뚱하고 골초, 술고래인 노처녀에게 핸섬가이 두 명이 반해 삼각관계가 된다는 설정부터 판타지이다. 게다가 매번 엇갈렸던 상대와 결국엔 서로의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게 된다는 엔딩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더욱 공감한다. 저 평범한 브리짓이 관객 자신인 것만 같아 속상하고 또 행복해한다. 더 이상 남자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해지길 응원한다. 이 영화는 지난 15년 동안 팬들의 이러한 응원에 부응하는 답가가 될 것이다.


셋의 조합이 생각보다 훌륭하다. 그러나 휴그랜트의 능청스러움이 그리운건 왜일까.


1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뻔한 스토리가 지겹다고 말할 수 있다. 미혼모, 동성애자 등 사회적 관심사들을 깊이 없이 재미 요소로만 다루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중적인 영화로서의 역할에는 충실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사랑스럽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옆집 언니 브리짓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과연 다시 조우한 첫사랑 마크 다아시와 이어졌을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극장을 향해도 좋다. 특히 웃음이 필요했던 분들에게 추천한다.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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