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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Sep 08. 2016

꿈꿔온 인생이 아니라도 괜찮아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2016)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꿔온 어른이 되었나요?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포스터에 적힌 한 문장이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나는 영화가 건네는 그 질문을 읽고는 움찔했다. 포스터 안에 서서 바깥을 응시하는 듯한 주연배우 4명의 눈빛이 “어서 말을 해봐. 넌 네가 꿈꿔온 어른이 되었어? 응?”이라고 나에게 묻는 것만 같다. 과연 이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꿈과 멀어진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가 열심히 살고 있는 이 인생이 잘못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잘 살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든다면…


영화는 초반부터 마지막 후반부까지 그 흔한 극적 서스펜스 하나 없이 물 흐르듯 천천히 진행된다. 긴장감 있는 스토리라곤 주인공 료타가 흥신소 대표 몰래 뒷 주머니를 찼다가 들킨 장면하나 정도 꼽을 수 있겠다.재난과 SF영화가 넘쳐나는 여름 극장가에 한없이 순한 이 영화가 벌써 7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니 놀랍다. 시끄러운 영화에 지친 나와 같은 관객들에겐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잔치국수 같은 그런 심심하지만 감칠맛 나는영화가 반갑기만 하다.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심심하지만 감칠맛 나는
잔치국수 같은 영화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변변치 않은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15년 전 문학상을 수상했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을 등한시한다.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 부르며 제대로 된 직장을 잡아 가족을 부양하기는 커녕 순수문학을 등한시하는 시대 탓을 하며자신의 삶에 핑계만 대고 살아가고 있다.그나마 소설 취재 차 부업으로 구한 흥신소 사설탐정 일로 근근히 돈을 벌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생기는 보너스를생활비로 쓰기보단‘심장이 뛰는 취미’라 부르는 경륜과 빠찡코에 쏟아 붓는다. 심지어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훔쳐다 전당포에 맡겨 돈을 구하려하는 료타.그의 인생이 그저한심해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그도 아들 싱고 앞에 서면 달라진다. 한없이 찌질한 그도 아들 앞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아버지로 변신한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자신은 굶더라도 자식에겐 좋은 것만 먹이고 싶고, 자신은 비굴해지더라도 자식에겐 좋은 것만 입히고 싶은 부모의 모습 말이다.
 




 료타에게도 한없이 태산 같은 부모님이 계신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분신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료타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기린)이다. 감독이 관객에게 이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요시코의 입을 통해 전달 받을 수 있다. 너무 직접적이고 1차원적인 전달임에도 영화가 단순해보이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관록이 묻어나는 키키 기린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관객을 너무 못믿는 것 아니냐?’,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게 되면 영화가 너무 1차원적으로 단순화된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요시코의 대사가오히려 오래 살아온 한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조언으로 느껴져더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요시코가 무심결에 건넨 대사들이 주옥같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야’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는 없어'
 ‘원하던 삶의 모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
 ‘행복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어’
 ‘그렇게 날마다 즐겁게 살아가는 거야’
 



철부지 어른아이 같았던 료타는 태풍이 휘몰아친날 밤, 우연치 않게 이혼한 전처와 아들 싱고, 그리고 엄마 요시코와 함께 보내게 되고, 이 하룻 밤이 료타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도대체 료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골 집 어머니 같은 그런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지금까지의 인생에 회의감이 든다면, 내가 가는 이 길에 대한 누군가의 진심어린 응원이 필요하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내가 꿈꿔온 모습으로 성장하지않았다 해도 뭐 어떤가. 이 모습 또한 나인 걸. 흘러간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날마다 재미있게 살아가면 그만 아닐까. 요시코 할머니에게서 인생 한수를 얻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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