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Oct 10. 2016

인생은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죠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2016) 리뷰

먼저 우디 앨런(81)의 끝없는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부지런한 우디 앨런 덕에 그의 팬들은 매년 2편 이상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올해 그가 내놓은 작품 <카페 소사이어티>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02년 <할리우드 엔딩>, 2011년 <미드나잇 인 파리> 이후 세 번째이다. '꿈꾸는 자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여실히 보여주고 계신 그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한결같다. 인생의 허무함, 사랑과 죽음, 화려한 삶의 씁쓸하고 더러운 이면 등 이 모든 것들을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언젠가부터는 철학적인 내용도 담기 시작했다. 이토록 많은 메시지가 뒤엉키지 않고 감각적으로 전달이 되니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할 말이 많은 감독이니 그의 영화엔 대사도 내레이션도 많다. 수다스러운 주인공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오히려 우디 앨런의 팬들은 그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대사가 등장할지 항상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한 동안 프랑스 파리와 남부, 이탈리아 등 유럽을 배경으로 떠돌아다니더니 그의 고향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뮤즈도 바뀌었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혹평을 받았던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이레셔널 맨>의 엠마 스톤이 사라지고, 새로운 뮤즈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등장했다. 제시 아이젠버그도 이번 영화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 이후 굳어진 너드(nerd)의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성공을 꿈꿨던 순수한 유태인 청년이 점차 세속화되면서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바비 역을 충실히 해냈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영상미와 황홀경에 빠트리는 BGM은 늘 그래 왔든 기대 이상이다. 이번엔 필름이 아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하니  앞서 개봉했던 두 편의 영화에서 사뭇 실망한 나로서는 <카페 소사이어티>가 반갑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우디 앨런스러운 영화를 보게 되어 기쁘다.




1930년 할리우드와 뉴욕을 오가는 꿈같은 로맨스

영화는 1930년대 미국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야말로 골든 에이지(Golden Age).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번성하고, 미국의 중산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꿈꾼 아메리칸드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 시기 말이다. 주인공 바비 또한 성공의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최고의 할리우드 에이전시 대표인 삼촌 필(스티브 커렐)에게 부탁해 일자리를 구해볼 심산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삼촌은 그의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소개해주고, 바비는 허영심에 찌든 할리우드 사람들과는 달리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보니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보니 또한 촌스럽지만 사랑 앞에선 한없이 순수해지는 바비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겐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있는 상황.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헤어지게 된다. 사랑에 상처받은 바비는 할리우드을 떠나 홀로 고향땅 뉴욕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갱스터인 형 밑에서 일하며 오래된 동네 클럽을 상류층만을 위한 최고급 사교클럽 '카페 소사이어티'로 변화시키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불과 몇 년 새에 본인이 그토록 경멸했던 상류층의 모습이 되어버린 바비. 돈과 명예, 권력, 안정된 가정까지 모두 얻게 된 그의 앞에 어느 날 문득 첫사랑 보니가 나타나게 되면서 잔잔했던 감정의 바다에 혼돈이 일어난다.


사랑이 전부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행복한 듯 보이지만 불륜과 배신이 가득한 할리우드. 화려함으로 치장된 그곳에서 진심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도 어쩌면 가짜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집어삼켜버린 허상의 탈을 쓴 인간의 모순됨을 감독은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꼬집어낸다. 가정적인 남편상으로 그려지는 바비의 삼촌 필은 알고 보면 새파랗게 어린 여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고 있다. 바비의 누나 이블린은 겉으로 보기엔 대학교수인 남편과 교양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체면 때문에 소음의 근원인 옆집 남자에게 제대로 된 항의 조차 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고질적인 편두통을 달고 산다. 모두가 행복한 척 살아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네 삶. 지킬 앤 하이드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어느새 사교클럽의 중심에 선 바비. 시골 촌뜨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 젊은 시절 진보를 외치던 정치인도 나이가 들어선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들의 변절 아닌 변절을 이해하긴 힘들지만 비난할 순 없다. 우리 모두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가? 한 때 지고지순한 순정파였던 바비도 상류층 세계에 발을 들인 후 변했다. 그가 혐오했던 삼촌 필처럼 능청스럽게 바람을 피운다. 소박한 삶을 꿈꾸던 보니도 불투명한 미래와 가난이 보이는 바비 대신 안정된 삶과 부가 보장된 필을 선택한다. 닮고 싶지 않다던 상류층 여성들의 허세 부림을 그대로 답습한다. 물론 그들의 변화가 관객들에겐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비난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변하기 때문이다.


가졌으나 다 가지지 못했다. 부를 가졌으나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고, 부를 이뤘으나 목숨을 잃었다. 체면은 얻었으나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따뜻한 색감과 화려한 재즈음악들이 오히려 더 공허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 어떻게 살든 공허함만 남을 뿐'일까? 아니면 '한 번뿐인 인생. 맘껏 즐기고 사랑하고 진실되게 살아보자'일까? 관객의 물음에 우디 앨런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그저 흘러갈 뿐. 문득 바비의 매형이 사교클럽의 화려함을 보며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어.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매우 달콤하고 환상적이게 보이지만,
이미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재미가 없다는 거야.


음미하지 못한 인생에 미련을 갖게된 두 사람. 하지만 꿈은 꿈일 뿐.


매거진의 이전글 꿈꿔온 인생이 아니라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