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결혼을 하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제 내 인생에 남자는 저 사람 한 명뿐이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 이다. 내가 남편의 인생에서 단 한 명뿐인 여자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동안 보아온 많은 부부들이 떠올랐다. 과연 정말 평생 그에게 여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처음 본 이성을 유혹하는 게 쉽지, 내 방귀 냄새, 밤에 이가는 습관, 겨울마다 튀어나오는 뱃살을 알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금이야 젊으니 노력하지않아도 여성성을 드러내주지만 시간의 흐름과 중력의 영향으로 이는 퇴색될 것이 분명하니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스러운 스타일, 끊임없는 자기관리 이런 외적인 부분보다 오늘은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한 바로는 남자는 "인정"을 바라는 것 같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1대1관계에서 내가 계속 여자로서 존재하고 싶다면 내 남편도 계속 남자여야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남자로 있을 수 있도록 인정해주어야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내 입장에서 남편을 오래도록 남자로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남자다웠던 모습들은 익숙해지거나 옅어지고 약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부분들은 모성애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술을 진탕마시고 들어온다던지 자기 절제가 안되는 모습을 보게되면 종국에는 개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거나 문제삼으면 남편과 나의 내면에서 "인정"은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산지 5년이 되어간다.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옷을 내키는 대로 벗어놓는 습관이 있다. 어떨 땐 외투는 거실에, 바지는 소파에, 양말은 침대 옆에 있어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처럼 그의 이동 루트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집에 있을 때면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그의 옷들을 볼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바로 정리해달라고 말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나쁜 습관은 잘 고쳐지지않는다. 두번째, 세번째 잔소리를 반복할때마다 내 안에서 남편이 한심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못해?'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한다.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문제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보이지않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려가 있다는 뜻이다. 분명 남편도 나의 단점을 눈감아주고 드러나지않게 덮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잔소리와 짜증은 넣어두고 이 문제를 감당가능한 크기로 줄이기로 했다. 청소하면서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그의 옷들을 드레스룸 구석에 던지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빠르게 던지면 어쩐지 쾌감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한 곳에 모아두었으니 밥먹고 바로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짜증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의 양과 시점을 하달받은 남편은 정확하게 치웠고 나는 남편을 "인정"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