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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Jun 04. 2024

제가 새우예요? 새우냐구요!

우당탕 새내기의 현명한 직장생활

카톡! 몇 년 전부터 재능기부로 시작한 카카오톡 상담이 들어왔습니다.          

해외 여러 나라의 주문을 받아 상품을 주문생산하는 베트남 현지법인의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27세 여성 A의 이야기입니다.      


업무 특성상 주문 물량과 납품 일자를 맞추기 위해 현장의 생산라인과 긴밀한 협조와 소통이 필요해요. 까칠한 바이어의 요구사항은 이미 생산에 들어간 제품을 수정하거나 다시 회수하여 재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겨요. 영업부에서는 거래처의 요구를 해결해야 하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을 분해해서 재가공하는 일은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래처의 요청으로 제품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더라도 계약 날짜에 납품해야 하니까요.      


그때부터 영업 부서와 생산 부서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상사 간 힘겨루기에 끼여 고래 싸움에 날마다 새우 등이 터지는 것이지요! 시장 상황이 계약 당시와 다르게 변화하고 있거나, 거래처에서 제품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생산이 시작된 이후에도 제품을 수정해서 만들어야만 해요. 생산 부서 책임자인 부장님께 수정해야 할 내용에 대해 결재를 올리면 고함을 지르며           

"너희 상무한테 가서 말해라!" "우리는 그렇게 못한다!"           

으름장을 놓는 통에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부서로 돌아오기 일쑵니다. 그럴 때는 소리 지르는 부장님이 밉고,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 상무님이 야속해서 펑펑 울어요. 내 잘못도 아닌데 억울하고 서러웠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싼 적도 많아요.      


오늘도 시제품을 확인하던 바이어의 요청으로 생산과정에서 수정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상무님은 아무런 지시도 없이 회사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마도 바이어와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며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런 상무님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수정 사항을 현장에 전달하는 일은 또 제가 해야만 했습니다. 긴장되어 심장 뛰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렸습니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생산부 부장실 노크를 했습니다. 내용을 설명하자마자           

“아니, 이미 다 만들어진 제품을 지금 뜯어고치라고? 그러면 납품은 일 년 후에 하면 되겠네!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도깨비방망이가! 너희 상무가 와서 일하라고 해라!” 호통을 쳤습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나보고 어쩌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내일은 기필코 사직서를 내던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정말 이런 일을 끝까지 견디며 해나가야 할까요?      


저는 카톡으로 보낸 A의 사연을 보며 가족과 멀리 떨어져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직장을 다니는 A가 참 대견하고 당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 문의 내용에서 A는 이미 영업부와 생산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저는 위로와 인정이 필요한 A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힘들었을 A에게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고 칭찬했습니다.      

A가 바이어를 상담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상무님과 함께 퇴근 후 바이어를 모시고 평소 가보지 못했던 비싼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상무님은 평소 어떤 분인지 물었습니다.      

평소 상무님은 아빠같이 자상한 분이라며 얼마 전 두통과 고열로 기숙사에서 끙끙 앓아누워있는데 상무님이 두통약을 보내주시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갈 수 있게 운전기사에 보내주셨답니다.           

생산부는 모두 퇴근했냐고 물어보니, 지난주부터 주말에 특근하고 이번 주 내내 야근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하면서 점점 A의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A가 일찍 출근해서 상무님의 책상에 턱 하니 갖다 올려둔 게 뭔지 아세요? 사직서? 아니요, A는 평소 상무님이 좋아하던 커피를 올려뒀습니다. 

부장님의 책상 위에도 커피를 사서 포스트잇에 이렇게 적어서 붙여 올려뒀습니다      

"부장님~ 요즘 너무 힘드시지요? 그래도 우리는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이 고비를 헤쳐 나갈 거라고 믿어요. 저도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오후에 보니 부장님 책상 가운데 A의 메모가 딱 붙어있더랍니다.     

상담은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가만히 귀 기울여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 해결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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