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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정리 도와드려도 될까요?

양산박에서 1

by 지안

비록 3시간짜리 자리지만 그래도 알바 자리를 구했다. 첫 출근을 하자 매니저가 갈아입을 옷을 주었고, 워키토키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식당에서 서빙이나 홀을 드나드는 일을 할 때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전까지 식당 알바를 해본 적 없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할 일은 주로 손님들이 다 먹고 나온 테이블을 정리하고 새로 세팅하는 일이었다. 내게 일을 처음 가르쳐 준 사수는 키는 작았지만 덩치가 좀 있는 남자였는데(당연히 한국인이다), 얼굴이 꽤 앳되어, 이제 갓 성인이 된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다만 혹시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가 될까 봐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는 내 사수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조금 달랐다. 그는 특정 구역에 테이블을 담당해서 고기를 구워주고, 반찬들을 서빙하는 일을 주로 했고, 나는 구역에 상관없이 모든 테이블 청소가 주 임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서빙하는 사람이 청소까지 모두 담당했으나, 손님이 너무 많고 회전율이 떨어지는 관계로 청소만 해줄 알바 자리를 만들어 뽑았던 것이었고, 내가 그 자리에 처음 배정된 사람이었다.


면접을 보러 왔을 때는 잘 몰랐지만, 양산박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주중에도 반드시 30분 이상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찼고, 주말에는 길면 두 시간 이상씩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차있는 기염을 토했다. 덩달아 직원들도 쉴틈 없이 바빠졌는데, 나 역시도 모든 테이블을 계속해서 순회하면서 청소하고 세팅하는 작업을 쉬지 않고 했다.


청소는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세팅하는 것 역시 중요했지만, 다른 것보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테이블에 앉아 수다만 떠는 손님들에게 테이블을 치워도 되냐고 묻고, 그들이 빨리 일어나서 떠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대기하는 고객들이 기다리다 지쳐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식사가 대강 모두 끝난 것 같은 손님들에게 다가가서,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테이블 정리 도와드려도 될까요?"


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현지인들에게는 영어로, 한국사람들에게는 한국어로, 중국사람들에게는 중국어로. 처음에는 사실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두어 번 하다 보니 별 감흥이 없어졌다. 너무 바빠서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식 고기구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새삼 놀라웠다.




첫 출근을 하고 다음 날, 매니저가 나와 같은 포지션의 직원을 한 명 더 고용했다. 한 명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기 때문이다. 새로 온 직원은 콜롬비아에서 온 남자로, 라틴계 스물한 살 청년이었다. 그는 호주에 학생비자로 방문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영어실력이 꽤나 준수해서 우리는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었다. 다만 아무래도 콜롬비아 인이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의 서빙 태도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껌을 씹으며 돌아다니기도 했고, 잠깐잠깐 시간이 날 때 대기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쉬기도 했다). 매니저는 이런 점을 불편해해서 바로바로 그에게 피드백을 해 주었고, 그는 의외로 순순히 태도를 고쳤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같은 일을 하니 서로 빠르게 필요한 것을 도와줄 수 있었고, 그게 바쁜 일 중간중간에 꽤 도움이 되었다.



양산박의 전체적인 직원 분위기는 꽤 수직적이었는데, 그에 반해 알바직원들끼리는 꽤나 친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차피 하루 3시간만 일하는 직원이기 때문에 딱히 다른 직원들과 친해져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함께 일하는 콜롬비아 친구와는 그래도 일을 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필요한 걸 말하느라 금방 친해질 수 있지만, 풀타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이름도 거의 외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피크타임 3시간은 그야말로 말 한마디 할 새도 없이 바빴고, 다른 직원들에게 한가로이 이름이나 묻고 수다나 떨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하루는 내가 출근을 조금 일찍 해서 일 시작 전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한 직원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이죠? 이름이 뭐예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박지안입니다."

"반가워요. 저는 류OO이에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다섯이요."

"오 저는 스물여덟이에요. 제가 나이가 더 많으니 말 놓아도 되죠?"


사실 나는 나이가 많다고 무작정 말부터 놓으려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는데, 그래도 어쩌랴, 면전에 대고 안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떨떠름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했다. 그도 내 태도를 느꼈는지 이후 며칠간 딱히 친한 척을 하거나 다가오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형은 자신이 양산박에서 일을 오래 한 편이고, 내가 빨리 다른 직원들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비록 방식은 조금 거칠었지만, 알고 보니 좋은 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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