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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스테판스(Port Stephens) 여행 1

시드니 근교 여행 4

by 지안

블루마운틴에서 돌아온 후 일주일 뒤, 이번에는 포트 스테판스(Port Stephens)로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다. BRCQ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추천해 준 곳이었는데, 볼거리보다는 액티비티 위주로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블루마운틴을 같이 여행했던 Diana, SY와, 추가로 (마찬가지로 BRCQ에서 함께 일했던) JM에게 제안을 하여 4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담으로, 'Stephens'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누구는 '스테판스'로 누구는 '스티븐스'로 불렀던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구글맵에 표기된대로 '스테판스'로 부르려 한다.


포트 스테판스는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약 세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거리라서 시간 압박이 꽤 있었다. 처음에는 당일치기가 될까? 싶어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1박2일을 할 경우 (성별이 섞여있기 때문에) 호텔 방도 두 개를 잡아야 하고, 차량 렌트비용도 너무 비싸져서 어떻게든 당일로 맞추기로 하였다. 다행인 점은, 포트 스테판스에는 관광객이 체험하기에 딱 좋은 액티비티가 두 개 있었고, 나머지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라 빠르게 관광을 마칠 수 있어 보였다.




이번에는 시간 압박이 있어서, 약간 더 비싸지만 공항에서 바로 렌트가 가능한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렸다. 목적지까지 세 시간이나 걸리는데다가, 첫 번째 액티비티는 오전 10시 출발이라 못해도 아침 6시 반에는 시드니에서 출발해야 했다. 이전과 동일하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씻고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였다. 렌터카 사무실이 공항 안에 있어서 쉽고 빠르게 차를 빌릴 수 있었다.


시드니 공항은 시드니 시내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드니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포트 스테판스로 가기 위해서는 시드니 시내를 가로질러야 한다. 당일은 토요일이었는데, 잘못하다간 시외로 나가는 차량에 끼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일행들을 시내가 아닌 공항 근처에서 픽업하기로 하였다. 물론 모두 공항에 같이 가면 가장 좋긴 하지만, 시드니 지하철은 공항에서 내리면 추가 요금이 붙는 방식이라 굳이 돈을 더 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당일 아침 6시 반까지 공항 바로 앞의 지하철역인 마스콧(Mascot) 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6시 10분 쯤, 차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와 마스콧 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할 때는 밖이 아직 어두웠는데, 마스콧 역에 도착할 때쯤이 되자 어스름한 새벽이 되었다. 마스콧 역에서 일행 3명을 픽업하고 (다행히 아무도 지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곧장 포트 스테판스로 향했다. 시드니에서 잠깐이라도 갇히게 되면 액티비티 시간에 늦어버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시내를 빠져나왔다.


포트 스테판스로 가는 길에는 세 명 모두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피곤할 만하지. 나는 이런 일정이 세 번째라 벌써 익숙해져 버렸는지 딱히 피곤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200km 떨어진 곳을 당일치기 한다고 하면 무리가 있는 일정 같은데, 막상 호주에 오니 200km 정도는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키아마와 블루마운틴으로 이미 단련이 된 탓이겠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새삼 호주 땅이 넓긴 넓다 싶다.




세 시간을 꾸준히 달려, 마침내 포트 스테판스에 도착했다. 첫 번째 액티비티는 '돌고래 투어'였다. 돌고래 투어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돌고래 무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투어였다. 배의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1시 반 이렇게 두 차례 있었고, 투어 총 시간은 2시간 이었다. 투어 자체가 시간이 꽤 길다보니 오후 1시 반에 타면 끝나자마자 다시 시드니로 출발해야 하는 일정이 되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오전 10시 투어로 신청하였다.


커버.HEIC 넬슨 베이 ©Jian


투어 업체는 넬슨 배이(Nelson Bay)에 있었다. 우리는 목적지에 9시 50분 정도에 도착했고(넬슨 배이는 포트 스테판스에서조차 꽤나 북쪽에 있었다), 근처에 차를 대었다. 투어 자체는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 해 놓았는데, 따로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하는지, 아니면 배를 바로 타면 되는지 몰라서 우선 매표소로 달려갔다.


매표소는 선착장으로 나가는 데크 한 쪽에 지어진 작은 판잣집이었다. 직원이 한 명 뿐이었는데, 이미 다른 관광객 한 팀을 상대하고 있었다. 9시 58분이 되서야 겨우 우리 질문을 받아주었다.


"제가 10시에 돌고래 투어 예약했는데, 티켓을 따로 발급받아야 해요?"

"아, 아니요. 바로 배에 타세요. 배 앞에서 검표하는 사람 있습니다."

"배는 어디 있어요?"

"나가서 오른쪽 끝이요."


우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매표소에서 나와 데크 끝에 정박된 배로 달려갔다. 다행이 늦지 않게 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배는 생각보다 작았다. 20~30명 정도 수용 가능해 보였는데, 주 갑판에는 의자가 따로 없고, 양 끝부분에만 등받이 없는 의자가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배의 우현, 수면 가까운 곳에 밧줄 그물로 된 날개(?) 같은 부분이 붙어 있었는데, 그물이 반쯤 물 아래 잠겨있어서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만 이미 완연한 가을 날씨에 접어든 시기라서 물놀이를 하기에는 너무 추워보였다.


갑판에 올라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자, 곧 배가 출발했다. 날씨는 아침에 약간 비가 내리긴 했지만, 이내 해가 뜨고 구름이 모두 걷혔다. 바닷가라서 바람이 좀 강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청명하고 기분 좋은 온도였다. 출발하고 얼마 뒤, 배의 항해사이자 투어가이드로 보이는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서 투어 개요를 설명해 주었고, 돌고래는 볼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만약 돌고래 무리를 만나면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엔진을 잠시 멈추고 몇 분간 기다린다고도 안내받았다.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지점까지는 최소 1시간 정도 운항해야 했는데, 배 안이라 바다구경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휴대폰 데이터도 터지지 않았던 것 같다). Diana와 JM은 일찍 일어난 탓에 많이 피곤했는지, 의자에 앉아 서로 기대어 잠들었고, 나는 SY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키* 앞에 붙어있는 가이드 매뉴얼을 발견했는데, 항해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읽어보았다. 매뉴얼은 투어 내용에 대한 개요와 안전수칙이 적혀있었는데,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인사말과 몇몇 문장이 한국어로 따로 번역된 표가 붙어있었다. 어차피 대기시간도 길겠다, 말동무도 할 겸 나는 항해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배의 운전대


"Hello, Sir. How are you?"

"Good. How are you?"

"날씨가 좋네요, 아침에 비가 와서 걱정했는데."

"맞아요. 다행이죠."

"비 오면 출항을 못하나요?"

"비보다는 파도 높이가 중요하죠. 오늘은 그나마 파도가 낮아서 출발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네요. 이 일은 얼마나 하셨나요?"

"한 3년 정도요."

"오늘 돌고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나요?"

"확답은 못하겠네요. 그래도 한 80%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좋네요! 아, 방금 매뉴얼을 보니까 한국어 번역이 있던데, 한국어도 할 줄 아세요?"

"한국어요? 아, 그건 아마 다른 가이드가 붙여놓은 것 같네요. 저는 한국어 못합니다."

"아, 그렇군요. 사실 제가 한국에서 와서요. 반가운 마음에 여쭤 봤어요."


항해사는 친절한 듯, 퉁명스러운 듯 애매한 말투로 대답해주었다.


바다.HEIC 배 위에서 본 풍경 ©Jian
선장.HEIC 투어 안내를 맡아준 항해사님 ©Jian


간략한 대화를 마치고 일행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잠깐 의자에 앉아 쉬려던 찰나, 배 우현의 그물망 수영장이 있는 곳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다가가서 보니 한 인도인 가족과 몇몇 남미 사람들이 그물 위에 앉아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꽤 추웠는데, 몸에 열이 많으시네.




그렇게 바다 위를 해쳐나가기를 한 시간 여. 항해사는 갑자기 엔진을 끄고 우리를 불러 모았다.


"여러분, 배를 기준으로 11시 방향에 돌고래 무리가 보입니다! 지금부터는 엔진을 끄고, 해류를 따라서 천천히 운항하겠습니다. 돌고래들이 놀라지 않게요."


돌고래 무리는 육안으로 보기 힘들만큼 조그마한 점으로 보였다. 저걸 어떻게 발견한 거지? 돌고래들은 물 바깥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등지느러미만 간간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보일듯 말듯하여 얼른 카메라를 들면 그새 또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배는 천천히 돌고래 무리 방향으로 나아갔고, 돌고래들도 배의 기척을 느꼈는지 배 쪽으로 천천히 헤엄쳐 왔다. 조그마한 점들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등지느러미 모양이 선명히 보였다. 물 위로 뛰어오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몸집이 작았는데, 아마 새끼였을까.


30분 정도 지나자 돌고래들이 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돌고래는 배를 크게 경계하지는 않은 듯 했다. 오히려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처럼 배의 전 방향을 둘러싸고 함께 헤엄쳤다. 본인들을 신기해하는 인간들이 재미있었는지 가끔 물 위로 몸을 드러내 헤엄치기도 했다. 우리는 돌고래들이 혹시 놀라 달아나지 않을까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간간히 돌고래가 물 위로 올라올 때면 배 곳곳에서 탄성이 들렸다.


©Jian

돌고래들은 10여분을 우리와 함께 헤엄치다, 이내 배에서 멀어졌다. 항해사는 다시 시동을 걸었고, 한 시간을 달려 항구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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