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근교 여행 5
항구 근처에서 적당히 점심을 때우고, 이번에는 두 번째 액티비티를 즐기러 출발했다. 두 번째 액티비티는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ATV(4륜 바이크)를 탈 수 있는 투어였다.
ATV 투어 업체는 도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지역에 있었다. 우리는 넬슨 배이에서 빠져나와, 스톡턴 비치(Stockton Beach)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건물들이 듬성듬성 해질 때 쯤 투어 사무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무소 건물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커다란 오두막느낌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갈색 우드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벽 곳곳에 깃털이나 동물 털로 만든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전반적으로 원주민(?)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두막 앞 넓은 공터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예약내역을 보여주니 출발시간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 내부를 들러보고 대기 좌석에 앉았다. 마침 난로가 있어, 우리는 해풍으로 차가워진 몸을 데울 수 있었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ATV가 주차되어있는 출발지로 데려다 줄 셔틀이 도착했다.
우리와 함께 두어 팀이 추가로 셔틀에 탑승해서 투어 출발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사이에 간단한 안전수칙과 ATV 주행방법을 안내받았다. ATV 투어는, 숲길과 모래길을 쭉 주파하는 코스와 모래사장의 일정 구역 안에서 자유롭게 ATV를 즐길 수 있는 코스, 두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진을 찍기 위해 두 번째 코스를 선택하였다.
투어 출발지에는 수십 대의 ATV가 정차되어있었고, 큰 카라반이 한 대 있었다. 가이드는 승객들을 우선 카라반으로 안내했다. 카라반 안에는 헬멧과 형광조끼가 있었고, 우리는 맞는 사이즈를 대강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머리가 큰 편이라 맞는 헬멧을 고르는 데 시간을 좀 썼던 것 같다.
헬멧을 쓰고, ATV 운행방법과 안전수칙을 한 번 더 듣고, 우리는 마침내 ATV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차례로 ATV에 탑승한 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줄줄이 해변으로 이동했다. ATV 주행방법은 스쿠터와 동일해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함께 온 일행들도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다만 내 덩치에는 약간 작은 듯 했는데, 후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약간 청소년용(?) 미니카를 타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숲길을 잠깐 해쳐나가자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변의 모래사장은 끝이 보이지 않게 넓었고 마치 사막처럼 낮은 언덕과 계곡을 형성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해변이 햇빛은 받아 반짝거렸고, 오른쪽으로는 자연적으로 생긴 사구(砂丘) 위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숲과 사막과 바다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 듯하여, 이질적이면서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거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아름다운 풍경을 완벽히 완성시켜주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의 한 지점에 도착해서 자유롭게 ATV를 타고 돌아다녔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었다는 점인데, 아마 ATV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설정했겠지 싶다. ATV 최고 속도는 25km/h 정도였다.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모래 언덕에서 아래로 빠르게 달려 나갈 때만큼은 충만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풍경 좋은 곳에 잠깐 멈춰 사진 찍기도 하고, 함께 온 친구들과 서로 ATV를 타는 모습을 찍어주기도 하고, 빠르게, 느리게, 함께 그리고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순식간에 체험 시간이 지나갔다.
체험이 끝나고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다시 줄을 맞춰 ATV 주차 장소로 돌아왔다. 다시 셔틀을 타고 사무소로 돌아와 우리 차에 올랐다. 옷에 모래가 잔뜩 묻어, 모두들 차를 타기 전에 머리부터 신발까지 모래를 털어냈다. 헬멧을 썻는데 머리에는 왜 모래가 들어간거지?
두 가지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시드니로의 귀갓길에 올랐다. 포트 스테판스와 시드니 사이에는 간단히 볼 수 있는 관광지가 하나 있어서,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관광지 이름은 '롱 제티(Long Jetty)'. 우유에 타먹는 코코아가루가 문득 떠오르는 이곳은, 사실 넓은 호수(정확히는 바닷물이 만 안쪽에 갇혀서 생긴 호수이다. 강릉의 경포호와 비슷한데 크기가 훨씬 크다)에 설치된 길고 좁은 나무 데크가 유명한 관광지이다.
포트 스테판스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롱 제티에 도착했다. 호수 안쪽으로 쭉 뻗은 데크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배가 정박해 있지는 않았다. 데크 길이가 워낙 길어서 수평선까지 쭉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쪽에는 흰 난간이 있었고, 바닥이 수면과 가까워서 호수와 더욱 조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데크에 서서 호수 쪽을 보아도, 육지 쪽을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청명했고, 해가 조금씩 지면서, 금빛 노을도 호수 위를 덮었다.
롱 제티에서 한 시간 정도 사진을 찍고 호수를 감상하다, 우리는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시드니로 돌아왔다. 시간이 많이 늦어 다들 배고파했는데, Diana의 추천으로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시드니에 들어오면서 교통체증이 심해졌고, 렌터카 반납시간이 약간 애매해졌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출발하면 반납시간에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우선 일행들을 음식점에 내려다주고, 차를 반납하고,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어차피 우리가 찾은 태국 음식점은 인기가 많은 곳이라, 주말 저녁에는 항상 웨이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 같이 돌아가서 차 반납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웨이팅부터 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운전하는 내가 차를 따로 반납하고, 나머지 일행이 식당에서 웨이팅하고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시간 분배가 맞을 것 같아, 그렇게 진행하기로 하였다.
시드니 시내에 진입해 태국 음식점 앞에 도착하니 과연 웨이팅이 있었다. 그런데 한 3~4팀 정도? 생각보다 금방 입장할 수 있어 보였다. 나는 일행 세 명을 모두 내려주고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가는 길도 약간 막혔지만, 다행이 시간 안에 도착하여 반납을 진행할 수 있었다.
차량 반납 후,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좀 더 늘어지긴 했는데, 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음식점에 도착하니 친구들은 이미 음식을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 그들도 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는 눈치가 보였겠지. 물어보니 입장하고 이미 1시간 정도 지났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합류해 몇 가지 요리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 날 처음으로 푸팟퐁커리를 먹어보았는데, 맛은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다른 친구들이 다 먹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가 돼 버려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근래 3주간 매주, 그것도 주마다 하루 있는 휴일에 당일치기를 하니,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행을 할 때마다 점점 만족스러운 경험이 쌓여가는 것이 느껴져, 후회는 없다.
이제 시드니 근처는 다 돌아봤으니, 당분간 여행은 쉬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