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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타임에만 일할 직원이 필요해요.

호주의 첫인상 6

by 지안

이력서를 직접 돌리러 다닌 지 일주일, 이미 9월이 되었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혹시나 취업 실패를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예산은 넉넉히 잡고 가져왔지만, 그래도 그것만큼은 싫었다.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이젠 진짜 찬밥 더운밥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인 가게에도 이력서를 적극적으로 넣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이력서를 넣은 가게들은 죄다 감감무소식이었고, 검트리(Gumtree)를 통해 지원한 한 한국 BBQ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양산박'이라는 곳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식 고깃집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에 하나였다. 직원들은 테이블 정리 파트에 외국인 한두 명, 석쇠를 달구고 씻는 파트에 외국인 두세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이었다(그 외국인 직원들 조차 현지인은 아니었고, 학생비자로 온 남미, 동남아 사람들이었다).


레스토랑 알바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음식 주문받고, 나오면 가져다주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나 싶어서 면접 연락이 오자 냉큼 가겠다고 했다. 레스토랑의 위치는 차이나타운에서 달링 하버(Darling Harbour)로 나가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멀지는 않았고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였다.


KakaoTalk_20210720_165417910.jpg 달링 하버 ©Jian

레스토랑에 도착해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다리에 크게 문신을 한 직원이 매니저에게 데려다주었다. 레스토랑은 테이블이 약 25개 정도의 규모였고, 특이하게도 테이블들의 반은 건물 안쪽에, 반은 건물 바깥쪽에 위치하는 구조였다(여닫을 수 있는 지붕이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식사를 즐기려 하는 사람과, 대규모로 몰려와 왁자지껄한 회식을 즐기려 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모두 충족하기 위한 걸까. 면접을 점심 시간대에 진행해서 그런지 꽤나 한가해 보였다.


면접은 사실 별게 없었다. 매니저가 레스토랑에서 서빙일 해 본 적이 있냐 물었다. 없다고 대답했다. 영어를 잘하냐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외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저희가 지금 피크타임인 6시부터 9시까지만 일할 직원을 뽑고 있거든요. 지금 풀타임 근무자는 이미 가득 찼어요. 그래도 혹시나 일 하시다가 다른 직원이 그만두게 되면 풀타임으로 일하실 수 있게 될 거예요. 휴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고요. 요일을 정하지는 않고, 매주 짜이는 시프트 따라 다릅니다."


겨우 하루 세 시간 이긴 하지만, 시간대가 괜찮았다. 6시에서 9시라면, 오전에 시작해서 5시 이전에 끝나는 다른 알바를 찾아 투잡을 뛸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정수입이 하나라도 생기면 조금 더 여유 있게 다른 알바 자리를 찾으러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급이었는데, 제시받은 금액은 16불. 심지어 이것도 다른 풀타임 근무자들보다 1불 높은 것이었다(피크타임에만 일하는 직원들은 일하는 절대 시간이 적기 때문에 보통 시급이 풀타임 근무자들보다 조금 높은 편이다). 2018년 호주 최저임금은 18불 정도였는데 그것보다 2불이나 낮은 것이다. 다만 캐시 잡(고용 신고 없이 구두로만 계약해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는 않아서(불법이긴 하지만) 벌이 자체는 비슷하려나.


낮은 시급에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일하기로 했다. 하루 3시간 씩 주 6일이면, 일주일에 288불은 벌 수 있고, 집세 160불을 내고도 128불이 남는다. 거기에 걸어서 출퇴근하면 되니, 교통비도 없다. 아껴먹으면 살만 하겠는데? 내일부터 바로 나와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겨우 하루 세 시간이지만, 어쨌든 일을 구하긴 구했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상상한, 현지 매장이나 회사에서 멋지게 영어를 쓰며 일하는 삶은 이미 틀렸다. 그래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잡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좀 사라졌다. 레스토랑을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차이나타운도 둘러보고, 근처에 있던 달링하버에도 한 번 가봤다. 날씨가 좋았고 풍경도 예뻤다. 여태껏 이력서를 돌리느라 매장들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는데, 이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참 아름답고 관광하기 좋은 도시네,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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