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지금까지 고치지 못한 습관이다.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도 몇 가지씩 해내며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부지기수라지만 내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다. 그저 시간을 쪼개어 당장 눈앞에 놓인 하나에 빠졌다 나와야, 앞에 놓인 다음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마저 다이어리에 시간을 적고, ‘이때까지는 해내겠다.’는 목록을 작성한다. 해낸 것은 하나씩 지워놓고 안도하지만 끝내 해내지 못한 것들에는 죄책감이라는 줄을 긋는다. 잘못한 일도 아닌데 적어낸 약속이란 것에 마음이 찔리는 격이다. 그러니 하나를 바라보며 해내는 것만으로도 두 가지 일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버겁다.
아이의 부스럭거림에 눈을 떠 서로 껴안고 기분 좋은 말을 나눈다. 밥 먹는 것보다 엄마, 아빠와 노는 것이 우선인 아이와 함께 간신히 아침밥을 먹고 등원시킨다.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한 후 내게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 4시간, 많아야 5시간. 그 시간 안에 글을 쓰고 해낼 수 있는 목록을 지워낸다.
9월, 여느 때처럼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길을 걸어가던 날. 가을의 초입인데 문득 겨울 냄새가 났다. 손끝에 찬바람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춥거나 긴장될 때 혹은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습관처럼 손을 꽉 쥐곤 한다. 손을 펴고 힘을 빼는 것보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지도록 꽉 오므리고 있을 때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그렇게 쥔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손안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꽉 쥐고 다니던 시절이 있다. 산 아래 있어 더욱더 차갑고 시린 바람이 몸속을 파고드는 겨울의 교정에는 매년 현수막이 걸렸다. 저만치 멀리 나아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름들. 그 이름들이 시린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작은 손을 오므려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젠가 내 이름도 시린 바람에 나부끼는 순간이 올까?'
그것은 소원이라기보다 어쩌면 비밀에 가까웠다. 너무 작고 초라한 마음이라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는 꽉 쥔 손안에 숨겨두어야만 했던 마음. 당연한 것이지만 힘을 줘 손을 쥐고 있으면 그 안에서 온기가 차올랐다. 뜨끈해진 손바닥의 감각이 좋아서 자꾸만 비밀스러운 소원을 손안에 가두었다.
시간은 먹는 나이만큼 빠른 속도로 흐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마음에 와닿을 때쯤. 그 소원은 손톱 밑에서 달랑거리다 떨어진 건지 아니면 내가 힘이 빠져 놓쳐버린 건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손 안의 그것은 가을의 찬바람에 불현듯 다시 잡혔다.
가을의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겨울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뜨거운 여름의 열정이 실패의 얼룩으로 남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짧은 에세이 공모전에서 탈락했다.
"아직 안 되는 건가."
쓰린 속을 달랠 길 없어 다시 손을 오므려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무심코 뉴스 기사 하나를 읽었다. 유명 베이글 카페에서 일하던 젊은 청년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였다. 충격이 가시지 않아 이 사건에 대한 글들을 모두 찾아 읽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내 탈락의 고배는 너무나 가벼워 부끄러웠고 동시에 거대한 질문이 나를 덮쳤다.
삶이란 무엇에 의해 이토록 허망하게 스러지는가. 그 스러짐은 오롯이 개인의 불운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구조적인 비극인가. 답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살아가면서 신춘문예를 쓰는 일이 정말 필요한 걸까?’
누군가는 먹고사는 일에 치여 청춘을 잃어버렸는데 고작 이야기를 쓰려 끙끙대는 것은 운 좋은 사치가 아닐까. 꾸준히 실패하면서도 습관처럼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손을 오므려 써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다시 손을 꽉 쥔다. 차가워진 손끝을 오므려 과거의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그 작은 온기를 다시 만들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서. 스러지는 삶들을 기억하고 공허한 마음에 질문을 던지고 잊혔던 소원을 다시 손안에 꽉 쥐어보는 것.
이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신춘문예의 계절도 돌아온다. 9월의 가을바람 속에서 나는 겨울의 끝을 상상한다. 바람이 시리든 시리지 않든 습관처럼 이를 꽉 깨물고 손을 꽉 쥔 채 그 뜨끈한 온기를 믿으며.
썼습니다. 신춘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