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너뜨려야 다시 지을 수 있다

by 지안의 문장


은수가 자신의 방에서 어항을 던져 죽은 물고기를 품에 안는 그 순간. 모든 중력을 이겨내 부력으로 향하는 시작점이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나가서 펜을 들어 장면 하나하나에 스스로 피드백을 주며 수정을 하고, 때로는 혼자만의 방에서 졸음을 떨쳐내며 정신을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아마도 해내고 있다는 확신이 차올랐기에 그런 감정을 갖게 된 것일 테다.


그렇게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며칠 밤낮을 은수의 세계를 쌓아 올려 마침표를 찍은 초고를 완성했다. 완벽까지는 아니지만 완전해지는 초석은 다졌겠지.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이 정도를 이루는 건 무언가를 해냈다는 안도감마저 느끼도록 했다.


‘열심’이라는 착각은 참으로 달콤한 초콜릿 조각 같아서 몸에는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그저 달콤하다는 이유로 착각을 삼켜버리는 안일한 행동을 하게 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아주 드물 것이다. 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객관적이라는 지표는 자신에게 들이댈 수 없는 일이니까. 자신이 쓴 글도 마찬가지다. 혼자 쓰며 읽어보고서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아가는 과정이 느리다 못해, 찾지 못하고 눈감아 버리는 일이 허다할 거다. 제일 좋은 방법은 남에게 보여야 한다. 신랄하게 말해 줄 사람에게. 그 사람은 내 옆에서 함께하는 남편이다. 남편은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매우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다.


“네가 글을 쓸 줄 아는 건 맞지만 그렇게 잘 쓰는 건 아니니까 항상 다시 써야 해.”


좋은 말인 줄 아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그건 자존심이 혼자 상처받아 꿈틀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저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함이 맞다. 글을 쓸 줄 아는 건 맞지만 잘 쓴다고 생각하는 착각의 초콜릿을 과다 복용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야 또 고치고, 또 고치는 반복의 노동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착각의 초콜릿은 무서운 것이다.


매서운 눈빛으로 한 자 한 자 읽어나가는 남편의 눈을 따라가며 조용한 적막함 앞에서 긴장감이 생긴다. ‘그래도 애썼다는 격려의 말 한마디는 하겠지’라는 기대. 혹은 ‘잘 썼네’와 같은 칭찬의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를 그 순간. 날카로운 물음표들이 쏟아졌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그건 너의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잖아."

"다른 인물들은 왜 있는 거야?"

“이거 딱 하나. 상황 설정은 좋은 거 같긴 한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이 글을 쓰려고 잠을 줄여가며 얼마나 애썼는데. 아이 등원시키고 4시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급기야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말을 뱉는다.

“내가 쓴 대사 이해는 한 거야?”


중력을 벗어던지게 하겠다는 스스로가 중력을 끌어안고 있었다. 자존심이라는 거대한 중력의 회색 정장. 그 회색 정장을 방패 삼아서 내 글을 방어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였다. 대화를 이어가던 차에 남편이 차분하게 정곡을 찌른다.


“작가님, 나는 지금 네 글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말하는 거야.”


맞다. 남편의 말은 한없이 다정한 거였다. 모두 글을 위한 말이었으니까. 방어적이었던 감정이 가라앉고 다시 원고를 들여다보았을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야기를 가장 아끼고 잘 안다는 마음의 사랑을 무기 삼아, 그것과 무관한 글을 쓴 나의 노력을 더 사랑하고 있었던 거다. 쏟은 시간이 아까워서 다시 돌아가 고쳐 쓰는 과정이 두려워서 엉성한 문장들을 꽉 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거다.


'아까움'


이미 지어 올린 집이 부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동안 쌓은 벽돌이 아까워서 무너뜨리지 못하는 미련함이 치덕치덕 붙은 마음.


결단을 내려야 했다. 부실함 위에 적당히 땜질해서 위태로운 집을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지을 것인가.


백지였던 종이 위를 가득 채워 넣은 말들이 보인다. ‘아까움’을 버려야 할 때다. 손을 펴서 채워 넣은 말들을 찢는다. 찢어진 종이를 차곡히 모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버려진 말의 틈에서 딱 한 가지 남은 것은 이름뿐이다.


'은수'


텅 빈 종이를 다시 마주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보다 더 황량해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홀가분했다. 꽉 쥐고 있던 손을 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서늘한 해방감이었다.


무너뜨려야 다시 지을 수 있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일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우는 일인 줄 알았는데, 실은 아까워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었다. 스스로가 만들어 낸 착각 속의 만족과 아집, 노력에 대한 보상 심리까지도 버릴 줄 알아야 진짜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은수의 문을 두드린다.

무너진 폐허 위에서 다시 만들어질 세계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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