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달을 건너 네게 갈게 (소설)

아직은 이름 없는 장면 1

by 지안의 문장

낯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는 두 아이가 있다. 바로 옆에 커다란 철문 입구가 있음에도 가장자리 작은 철문 앞에서 손을 꼭 잡고 두리번거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철문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공 차는 소리, 가끔 지나가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데도 믿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모르는 어른들의 물음도 못 들은 척 외면한다.

오후가 되어 아이들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자 빨간 노을이 진다. 노을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 마냥, 나도 무거운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애꿎은 철문을 발로 찬다. 아빠는 우리를 생전 처음 발을 디디는 곳에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웃음만 남겨둔 채 다시 오지 않는다. 동생은 천진한 얼굴로 묻는다.


“누나, 우리 여기 언제까지 서 있어?”

그러게, 언제까지고 여기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결국은 이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들과 섞여서 우리 둘만이 헤쳐 나가야 할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9살의 나는 아기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서는 7살의 동생인 진짜 아기가 꺼이꺼이 함께 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동화책에서 읽어 본,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는 말이 진짜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보육원에서의 10년은 참 많은 걸 바꿔놓는다. 모르는 얼굴들과 섞여 잠을 자는 방에서 눈물로 이불자락을 적시면 시끄럽다고 혼이 나던 9살 작은 아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녀와 구석진 자리를 찾아 섞이지 못한 날들이 높이 쌓여 10년이라는 시간을 채운다. 어느새 짙은 남색 교복을 입고, 발목까지 오는 흰 양말과 굽 낮은 구두를 신고, 가방을 멘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서 있다. 이때쯤에는 ‘보육원에 사는 애’, ‘엄마 아빠 없는 애’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다. 그렇게 지울 수 없는 꼬리표를 매달고 졸업식이 있는 겨울을 맞이한다. 이다음 봄이 오면 몰래 눈물로 이불을 적시거나, 음악이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일부러 귀에 꽂고 다닐 일이 없을까. 지금의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무렵 아빠가 찾아왔다. 수척한 얼굴과 낡은 옷, 낡은 구두, 표정 없는 얼굴로.

“잘 있었니. 보기에는 잘 지낸 거 같네.”

양손을 꽉 쥐었다. 이를 꽉 깨물고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려 얼굴에 온 힘을 줬다. 무슨 말부터 뱉어내야 할까. 부들거리는 몸처럼 입도 떨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참아낸 눈물은 깊은 밤 이불속에 숨어 혼자 흘려내야 했다.


산 중턱에 있는 여고의 졸업식은 시끄럽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발걸음과 축하를 건네는 목소리, 추억 좀 남기려 교복 위로 던져지는 하얀 밀가루와 흩어지는 비명들. 그 소란 가운데, 부모님들이 모두 지켜보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학생주임 선생님의 호통과 함께 한 졸업생의 뺨이 돌아간다.


짝-. 날카로운 파열음. 결국은 아픔으로 졸업을 치른다. 꼭 마지막을 그런 기억 속에 남겨둬야 했었나. 그 아이는 어떤 졸업식을 기대했을까. 맞은 건 밀가루를 뒤집어쓴 저 아이인데, 왜 내 뺨이 붉게 달아오르도록 아픈지 모르겠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낯선 철문 앞에 내버려졌던 9살의 그날처럼, 나 또한 세상에게 이유 없이 맞고 있는 기분이라서였을까.


선생님은 뺨을 때린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을까. 아마 하지 않았을 거다. 그땐 다 그랬으니까. 어른이 사과를 잘하지 않는 게 당연했으니까.


“전 다시는 아빠를 만나지 못하겠어요.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아빠가 빼앗았어요. 나도 아빠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거예요. 앞으로의 내 인생을 보지 못하는 걸로.”


사과 한 마디 없는 사람을 억지로 용서할 수는 없어서,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빠를 미워하느라 나 자신까지 그 철문 앞에 계속 세워둘 수는 없었다. 그건 9살의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나는 계속 마음속 그 작은 철문 앞으로 찾아갔다. 동생의 손을 잡고 서 있는 9살의 나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


“이제 그만 가자.”


동생의 손을 잡고 철문을 걸어 나온다. 비로소 그날의 기다림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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