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초등학생 시절.
반장은 보통 남학생.
부반장은 여학생으로 정해졌다.
반에서 유독 이쁘고 잘 사는 집 아이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 동네에서 몇 안 되는 피아노가 있는 집 아이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엄마가 반겨주는 아이들. 대부분 그런 아이들이 부반장이 되었다.
그런 부반장은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인 동시에 키가 작아 남 앞에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나에겐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키순으로 1번부터 줄을 서고 부반장은 그 줄 한 걸음 앞에 섰다.
난 키가 작아 늘 1번이었다.
그런 내가 부반장으로 앞에 섰을 때 1번인지 부반장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그 모습이 생각만으로도 내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공부를 잘했던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 임시 반장을 시켜주시며 우리 반 반장을 권하셨다.
난 주저 없이 “키가 작아서 하기 싫은데요”라고 말했다.
교탁 앞에 서서 학급 회의를 할 때 교탁에 목만 걸려 있는 듯한 내 작은 키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반장의 꿈은 저 구석 어둡고 어두운 곳에 꼭꼭 덮어두었다.
내 꿈을 방해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난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키를 본다.
얼굴이 어떻든 옷이 어떻든 다 상관없다.
연예인도 키가 크면 일단 좋아하는 명단에서 제외다.
키가 작은 사람만 좋아한다.
병적인 키 집착.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은데 미치도록 달라붙어 있다.
어쩌면 용기 없는 내 모습에 최대의 핑곗거리인지도 모르겠다.
키 때문에 라는….
다른 건 다 괜찮은 사람인 것 마냥 비겁하게….
아이를 낳았을 때 시어머님께서 우리 집엔 키 작은 씨는 없다며 나를 보셨다.
키가 작다는 건 나에게 죄였다.
그런데 우리 아들도 또래보다 15cm 정도 작았다.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왜 그리 화가 나고 안쓰러운지.
거기에 또 하나 가슴이 무너지는 일.
7살 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아이가 한글도 제대로 모르고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네요”라며 전화를 하셨다.
수준별로 학습지를 하는데 아이가 가장 아래 단계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그 화를 아이에게 쏟아냈다.
“너 때문에 엄마가 창피하다고”
7살 운동회 때도 이것도 하기 싫다, 저것도 하기 싫다며 활동에 전혀 참석하지 않고 운동장 모래만 만지고 있는 아이 모습을 보는 순간 바보 같고 소심한 내 모습이 보여 아이를 끌고 집으로 왔다.
아이 가방에 옷을 챙겨 넣어 내쫓아버렸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잘못했다고 매달리는 아이를 발로 찼다.
아이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얘기한다.
너무 무서웠고 충격적이었다고.
1학년 입학하고 급식실 공사로 인해 학부모들이 두 달간 배식을 할 때였다.
학교 갈 때마다 혼이 나서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집에 오면 울면서 또 아이를 혼냈다.
항상 또래보다 1~2년 정도 늦은 아이라 속이 터졌다.
만 번을 잘해도 저런 한두 가지가 왜 이리 오래 마음에 남아있는지 괴로웠다.
마음을 비우자.
아이만 바라보자.
비교하지 말자.
조급해하지 말자.
잘할 수 있다.
컵을 넘치게 하는 물은 마지막 한 방울이다.
기다리자.
어떤 꽃이든 시기가 다를 뿐 언젠가는 반드시 피어난다.
온 만 가지 생각을 하며 나를 달랬다.
아이를 위로해야 하는 데 나를 달래기 바빴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너무 어렵고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부족하고 부끄러운 엄마로 14년을 보냈다.
그리고 2021년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
학급 회장을 뽑는데 “엄마, 나 한 번 나가볼까?”
라는 말을 했다.
나가지도 않았고 뽑히지도 않았는데 가슴 벅찬 이 느낌은 뭘까?
그 말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내가 그렇게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 아이가 다가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했다.
“무조건 나가봐야지.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우리 아들 멋지다.”
공약을 쓰고 5시간이 넘게 동영상을 편집하고 음악을 넣고 마감 시간까지 분주하게 노력했다.
3월 17일 드디어 회장 선거일.
후보 3명이 학우들 앞에서 각오를 발표하는 시간.
너무 떨려서 앞 친구들이 하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더란다.
그래도 속으로 되뇌었단다.
‘남들과 다르게 해야지’
순서가 되자 어수선한 친구들을 향해 강하게 손뼉 두 번 쫙쫙 치면서
“여러분! 집중해 주십시오”라는 말로 멋지게 시작했단다.
어찌나 떨렸던지 손뼉을 치는 손에 감각이 없더란다.
하지만 그 용기에 반 친구들도 멋지게 응답해 주었고, 우리 아이는 반의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미쳐 날뛰었는지 옆 반 돌봄 아이들이 그 반 선생님께 “선생님, 김지안 선생님 이상해요”라고 했단다.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에게 젤리를 하나씩 다 돌리면서 나의 기쁨을 만끽했다.
나의 꿈이 이루어진 것 마냥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믿지 못하고 조급해하고 닦달한 것에 미안했다.
멍하니 차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나왔다.
가슴이 뻥 뚫린다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나의 기쁨이 당선 하나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우울하고 어두운 곳에서 포기했지만 잊을 수 없었던 꿈이, 아이를 통해 이뤄지며 빛을 향해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부족한 엄마 때문에 힘들었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하게 잘 자라서 더 찬란하고 멋진 빛을 향해 나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모든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의 박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쫙쫙 쫙”
“쫙쫙 쫙”
아침 등굣길에 차 뒷좌석을 열며 “회장님, 타십시오”라고 했다.
“누가 보면 대기업 회장 된 줄 알겠어 엄마!”
푸하하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이 기쁨을 오래오래 만끽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