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 과제_60190395_이지안

나에게 문학이란

내가 유치원에 입학하기도 전에 엄마는 금을 팔아서 책을 샀다. 이런 얘기를 하면 끝이 없다.


나는 어떤 강의에서 오한기 작가의 <홍학이 된 사나이>를 읽고 토의하던 날을 기억한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영문화 학우는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뒤이어 자신은 하00을 시인으로 인정한다며 느닷없이 나를 비롯한 문창과 학우를 향한 도발(?)을 시도했다. "하00의 글은 이해가 된다. 반면 오한기의 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을 예술 혹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문학 뽕'에 취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문학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감탄했고 이내 궁금해졌다. 왜 문학을 이해하려고 하지?


나는 무언가에 대해 집요히 고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는 왜 귀여운지, 피라미드의 건축 원리는 뭔지,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저 사람의 인성이 글러 먹게 된 이유가 뭘지, 내가 왜 신용장이니 선하증권이니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공상은 즐거울 뿐 아니라 나를 비롯한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이런 공상을 통해 답을 얻지 못한 것이 바로 '내가 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다.


문창과에 입학한 직후에는 내가 엄청난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용감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떤 선배가 용감한 소설가가 되기 전에 인간부터 되라고 했을 때는 집에 돌아와서 울었다. 나쁜 말을 들어서 운 게 아니라 자기가 뭔데 내 꿈을 함부로 말하는지 열받아서 눈물이 났다. 지금은 그 선배로부터 같은 말을 들어도 딱히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게 바뀌었으니까.


3학년의 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모두 예술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마음이 지속되느냐 중간에 사그라지느냐의 차이일 뿐. 대학을 다니며 수 없이 많은 '단편 소설 감상문'을 제출했다. 파일에 'n주 차 과제_60190395_이지안'이라는 제목이 붙는 게 조금 슬펐다.

나는 심심하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고 영상매체보다 활자를 더 좋아하며 글자를 읽게 된 순간부터 늘 책과 함께였고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지 물으면 밤을 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평생 문학을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보다 내 글이 '과제'라고 명명되는 것에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내가 문학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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