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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의 자유비행 Nov 11. 2021

[소설단평] 9. 평행 우주의 나

최은영, 밝은 밤

  평행 우주란, 내가 현재 존재하며 살아가는 우주(세계)가 아닌 또 다른 우주를 의미한다. 평행 우주설은 평행 우주가 단순한 상상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평행 우주설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와 평행한 수많은 우주가 있다. 이는 마치 평행선 위에 점을 찍은 것처럼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 우주 안에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무한히 많은 ‘나’가 있다. ‘나’들은 독립된 채로 살아가고 끝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최은영의 장편 소설 『밝은 밤』에는 다양한 여성의 삶이 등장한다. 화자인 지연은 작가가 창조한 지역인 ‘희령’으로 이사 간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할머니 영옥을 만난다. 지연은 영옥과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할머니’와 기꺼이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 영옥의 이야기를 통해 지연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는 물론 새비 아주머니, 희자, 언니 정연의 삶을 톺아본다.

  『밝은 밤』 속 여성들의 삶은 ‘엄마와 딸’들의 관계로 압축된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지연의 관계는 물론이고 증조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의 관계, 할머니와 희자의 관계, 명숙할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는 모두 모녀 관계의 형상을 띤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증조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의 관계다. 이들은 일방적인 엄마, 딸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런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딸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아픈 고조할머니를 외면한 증조할머니에게 새비 아주머니는 새로운 엄마이자 친구이자 딸이 된다.

  『밝은 밤』에서 딸들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엄마들은 딸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그러나 엄마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다. 삶에 등장하는 악역. 엄마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는다. 딸은 자라서 미워하는 존재에서 미움받는 존재가 된다.

  지연은 지하철에서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던 이름 모를 여성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삶에 지친 어린 여성이 자신의 어깨를 빌리는 것을 ‘이해’한다. 어린 여성은 의문을 품는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믿고, 어깨에 기대서 자라는 관용을 베푸는 걸까. 그것에 특별한 이유가 없음을, 단지 쉴 곳이 되어주는 것뿐임을 알게 된 후 어린 여성은 ‘엄마’가 된다.

  지연은 누군가에게 딸이고 손녀이고 여동생이고 후배이고 친구이다.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는 할머니의 이야기고 그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고 지연의 이야기기도 하다.

  단순히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가족이다. 이 관점에서『밝은 밤』에 등장하는 (새비 아저씨를 제외한) 아버지들은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이 그저 ‘유지’되는 혈연관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성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들은 독립된 채 살아가고, 어쩌면 생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를 살았건, 어느 지역에서 살았건, 어떤 이름으로 누구와 살았건 이들은 모두 딸이자 엄마이다. 그리고 ‘나’이기도 하다. ‘나’는 계속해서 딸로 태어나고 엄마가 되는 것을 반복하며 생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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