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까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나?
20대 후반이 되어 생각해보니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그냥...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눈앞의 무언가만 보며 살았다는 것.
오늘의 수행평가, 곧 다가올 중간고사, 그리고 모의고사, 또 기말고사....
그런 성적에만 집중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생활기록부라고 하여(일명 생기부) 내신 성적 외에 학교에서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그래서 입시 때 특정 전형에서 그 부분을 어필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독서, 봉사, 동아리 활동, 수상내역 등등...을 적을 수 있었다.
나는 딱히 생기부를 통일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그때 재미있게 읽은 책을 기록하고, 재밌어 보이는 대회를 나가고, 하고 싶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고 생기부와 내신을 함께 보는 수시 전형이 가장 비중이 높았는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가고 싶은 학과와 관련하여 생기부를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가고 싶은 학과도 되고 싶은 무언가도 생각하지 않았던 고등학생이 생기부를 어떻게 통일할 수 있을까.
그냥 되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았다.
고3이 되어 경영학과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그냥 취업이 잘 될 것 같았다.
학교에서 모의 면접을 보는데 선생님들께서 왜 국문과가 아니라 경영햑과를 썼는지 반복해서 질문하셨다.
그냥.. 국문학적 능력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여....~ 이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듯 대답했던 것 같다.
대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입학한 대학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대학에 문 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입학생 선서를 하며 1등으로 입학했다.
별 생각도 없었고 그냥 돈 안 내고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합리화를 했다.
20살이 되고 나서 고등학생 때보다는 여유가 많아졌다.
시간적 여유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학교생활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적으로 등교하여 시간표에 맞춰진 대로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밥을 먹고 주어지는 과제를 하는 게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그때는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러한 생활 방식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20살에 처음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알게 된 선배, 동기들과 지하철을 타고 하교하는 경우가 잦았다.
거의 매일이었다.
내가 먼저 내렸고, 하교할 때는 그냥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등교할 때는 혼자였다.
그때 나는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겠지만..) 미뤄두었던 한국 소설과 시를 읽었다.
어느 아침, 나는 편혜영 선생님의 <아오이 가든>을 챙기고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있었다.
운이 좋았고, 날씨도 좋았다.
3월 말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고 정말 사나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울했다.
충격적이었고 머리가 깊은 수조에 잠긴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그 기간 동안은 수업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냥 계속 생각했다.
지금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지?
또 다른 날 아침, <아오이 가든> 때문에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아서 책을 꺼내지 않았다.
그때 내 가방 안에 들어있던 책은 아마도 김애란 선생님의 <바깥은 여름>? 아니면 <비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꺼내지 않았다.
그냥 또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까지 오래 누군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그때부터 문학은 나에게 어떤 예감이 되었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