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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의 자유비행 Aug 12. 2021

[소설단평] 2. 생존을 위한 도피

편혜영, 어쩌면 스무 번

  소설을 읽고 관심 없던 것이 갑자기 좋아지는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아오이 가든』을 읽었다. 며칠 내내 기분이 무척 우울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문학이 이렇게까지 내 삶에, 내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어쩌면 스무 번」을 읽고 옥수수가 무척 좋아졌다. 옥수수라는 식물에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도. 밭 가에 심어진 옥수수를 보면 늘 이 작품이 생각났다. 소설에서 “어쩌면 스무 번”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몇 번이고 작품을 다시 읽었다.

  ‘거짓말’에 집중하며 작품을 읽어봤다. (또다시 감탄했고 편혜영 작가에 대해 찬양하고 싶어 글을 쓰는 중간에 이 단락을 추가했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사회다. 질병과 취업난으로 많은 이들이 생계유지의 곤란을 겪고 있다. 20대로서, 청년세대로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불만과 억울함, 분노를 표출하다 못해 아예 체념한 상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잠시라도 쉬면 바로 뒤떨어진다.

  “거짓말”은 이런 상황에서 아주 유용한 도피처다. ‘별로 힘들지 않다’던지,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다’던지, ‘나는 잘 될 거야’라던지. 긍정을 가장해 부정을 애써 외면하려는 ‘거짓말’은 잠시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


  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에는 첫인상과 전복되는 이미지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먼저 “전도사”들이 그렇다. 찜질방 주인은 화자와 아내에게 전도사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들은 “따분하게 차려입”고는 “옥황상제”에 관해 일장연설을 한다. 다음은 “보안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이다. 이들은 매번 그랬던 것처럼 집 안으로 들어오고, 종국에는 아내가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든다.

  언뜻 보면 전도사는 불청객, 보안 회사 직원은 젠틀한 손님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 중반을 넘어가면 진짜 ‘불청객’이 누군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전도사는 옥황상제가 실존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실’을 주인공 부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옥황상제가 실존하는가에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보안 회사 직원들은 다르다. 화자도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화자가 회사생활을 하며 (어쩌면 지금껏 살아오며) 수 없이 만난 이들과 같다. 그래서 화자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아내를 보며 “처음 당한 일인데도 이런 사람들을 줄곧 겪어온 기분”을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보안 회사 직원만이 불청객일까? 아픈 장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이며 사나운 “개”라고 거짓말하는 아내도, 그런 아내에게 아무 말 못 하는 화자도, 다가올 불안한 미래를 애써 긍정하는 우리도, 모두가 ‘불청객’이다.

  불청객임을 알고도, 불청객으로 보일 것임을 알고도 우리가 거짓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거짓말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며 도피처가 된다.

  「어쩌면 스무 번」전체가 큰 옥수수 밭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높이 자란 옥수수가 모든 것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안에 쪼그리고 앉아 "꽉 찬 보름달을" 세어 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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