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

by 맑을담

그녀가 연차를 마치고 돌아온 날,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부재 중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다시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마음이 요동쳤다.

멀리서 보일 땐 반가웠지만,

가까워지면 시선을 둘 곳이 없어 괜히 모니터만 바라봤다.


회의실 구석에 앉아 있어도,

그녀의 발소리 하나에 몸이 먼저 긴장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야 비로소 그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끝내 대답 없이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퇴근길의 버스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창밖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서 길게 흔들렸다.

나는 휴대폰을 쥔 채,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낮에 있었던 짧은 언쟁이 마음에 걸렸다.

별일 아니라며 넘겼지만,

그 잔향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하루 종일 이어진 감정의 소모에 지쳐 있었고,

더 이상 혼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 오늘 회의 때 내가 괜히 분위기 불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전송 버튼을 누르자,

심장이 작게 ‘딱’ 하고 울렸다.

차창 밖의 어둠이 순간 조금 더 짙어졌다.


잠시 후, 메시지가 읽혔고 곧 알림음이 울렸다.



[그녀] 아니에요. 저도 좀 예민했어요.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



단 세 줄.

그런데 그 짧은 대화가 끝났을 뿐인데

공기가 달라졌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실처럼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고,

창밖 불빛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살짝 열린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사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책상도, 커피머신도, 햇살도 어제와 같았지만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 뒷모습이 유난히 또렷했다.


나는 무심한 척 걸었지만

걸음이 미묘하게 느려졌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척했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서류 넘기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이

이상하게 또렷했다.


점심 전, 복도에서 마주쳤다.

눈이 잠깐 마주쳤고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인데

오늘은 그 짧은 인사에

시간이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입술도 무의식적으로 작게 올라갔다.

그건 서로의 기분을 확인하는

아주 작은 신호 같았다.




오후 늦게,

급히 자료를 수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마감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는 같은 파트를 맡게 되었다.


프린트를 들고 돌아서는 순간,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심장이 살짝 움찔했지만

어제의 톡과 오늘의 공기가 스쳤다.


이번엔 피하지 말자.


“이 부분, 같이 볼까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한 의지였다.


그녀는 놀라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우리는 같은 모니터 앞에 나란히 섰다.

짧고 실무적인 대화만 오갔지만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우스를 넘겨받는 손끝이 잠깐 스쳤다.

화면을 가리키며 고개를 기울일 때마다

아주 작은 떨림들이 공기 사이를 스쳤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여긴 이렇게 바꾸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옆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했다.


생각보다 단정한 목소리,

차분한 표정.

멀찍이서만 바라보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나란히 서 있는 게

낯설고도 이상하게 편했다.


작업은 금세 끝났다.

별일 아닌 순간이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파문이 번졌다.

자리에 돌아와 모니터를 바라봤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다.


대신 묘하게 고요한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그날 이후,

둘 사이의 공기는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아주 작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하나가,

긴 시간을 흔들었다.

작가의 이전글부재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