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아래의 공기

by 맑을담

퇴근 시간 무렵,

하늘은 잔잔하게 젖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기울어진 작은 빗방울들이

공기 전체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나는 건물 입구 천장 밑에 서서

비의 결을 따라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얕게 고인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란 파문을 만들고, 금세 사라졌다.


우산이 없었다.

퇴근을 미루자니 어색했고,

그냥 뛰기엔 아까운 공기였다.


그때였다.

문 옆에서 조용히 펼쳐지는

검은 우산의 곡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였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더니 내 앞에 멈췄다.

빗줄기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잠시 드러났다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우산을 나를 향해 살짝 기울였다.


얇은 빗줄기가

우산 끝을 스치며 물방울로 맺혔다.



“같이 가요.”


짧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가

빗소리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산 아래로 들어섰다.

둥근 곡면 아래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깨와 어깨 사이, 한 뼘 남짓한 거리.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간격이

유난히 선명했다.


비가 내릴수록

공기 속 온도가 조금씩 맞춰졌다.

서로의 걸음이 조심스럽게 맞춰지고,

발끝이 빗물을 밟을 때마다

얕은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우산 가장자리를 따라 떨어지는 물방울이

일정한 리듬으로 어둠 속에 흩어졌다.


대화는 없었다.

대신 빗소리와 발소리가

둘 사이의 고요한 틈을 부드럽게 채웠다.


가로등 불빛이 우산 표면을 타고 흘러

그녀의 옆얼굴에 스치듯 반사됐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시선의 끝에 그녀의 옆선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그녀가 우산을 살짝 내 쪽으로 기울일 때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이 크게 느껴졌다.

공기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길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녀가 우산을 접으며 말했다.


“여기서 갈라지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짧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우산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떨어지며 바닥에 작게 튀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뒷모습이 비에 스치며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서 있던

그 좁은 우산 아래의 공기가

몸에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


마음 한가운데에,

아주 작은 떨림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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