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커피

by 맑을담

아침 회의가 끝난 뒤, 그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노트북은 닫혀 있고, 머그컵 자리에 반달 모양의 자국만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 이동 이야기가 사실이었나 보다.


그날은 유난히 복도가 길게 느껴졌다.

습관처럼 프린터 앞에 섰을 때, 종이가 걸리지 않았다.

작은 사고 하나 없이 모든 게 매끄럽게 돌아가는데, 그게 이상하게 공허했다.


점심 무렵, 메신저에 알림 하나가 떴다.


“잠깐 나올 수 있어요?”


지하 1층 카페.

그녀는 늘 앉던 창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웃는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프로젝트 이동한다고 들었어요.”

“네. 잠깐이에요. 3개월쯤? 근데 같은 건물이라 점심시간엔 자주 보겠죠.”


그녀가 종이컵을 밀어줬다.

뚜껑엔 스마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쪽이 늘 먼저 커피 사줬잖아요. 이번엔 제 차례예요.”


그 한마디가, 여태 나를 지탱해온 모든 ‘같은 자리, 같은 시간’보다 따뜻했다.

나는 커피를 들며 웃었다.

“이런 건 미리 말하고 옮기셔야죠. 프린터가 외로워하잖아요.”

그녀는 작게 웃었다.


“같은 시간엔, 자주 마주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자리만 조금 다를 뿐이에요.”


그 말이, 고백처럼 들렸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섰다.

햇빛이 유리창을 따라 흘러 그녀의 어깨 위에 닿았다.

그녀가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어쩌면 관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날 이후,

정확히 오후 두 시 반이면

복도 끝에서 커피 향이 났다.

그녀가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ai-generated-8226504_1280.png



작가의 이전글같은 자리, 같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