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처음으로 단둘이

by 맑을담

1편. 처음으로 단둘이

[프놀로그]


평일엔 지방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 새벽이면 집으로 올라온다.


아이가 잠들고 난 뒤에 오라는 아내의 말에,

금요일 밤을 견뎌내고

토요일 새벽에야 운전대를 잡는다.


집에 도착하면 해가 막 떠오르고,

아침잠 없는 다섯 살 딸은 “아빠, 밥 줘” 하고

내 품에 안긴다.



아내는 조용히 방에서 잠을 잔다.

주방에서 토스트를 굽고,

우유를 따르고,

식탁을 닦는 손끝에 익숙함이 묻어난다.


처음엔 특별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잘 웃는 편이다.


회사에선 성실하단 말을 듣고,

어딜 가든 무던하단 평을 듣는다.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다.


아내는 결혼 전엔 웃음이 많았고, 환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그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30 킬로 가까이 불어난 몸,

까칠해진 말투,

그리고 반복되는 무표정.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변했고,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무언가 엇나갔다는 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믿는 한 남자다.


그녀의 웃음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 무표정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옛날의 눈빛을 찾고 싶은 남자.


도망치듯 웃고,

피곤하다는 말로 감정을 눌러온 남자.


결국 어느 늦은 밤,

혼자 술을 마시며 스스로에게 묻는 남자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을까.
그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1편. 처음으로 단 둘이]



처음 딸과 단둘이 가족모임에 참석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말 오후, 식당 안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바깥 나무 그림자가

바닥 위에 일렁였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젓가락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섞여

한껏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묘하게 겉돌고 있었다.
딸과 단둘이 앉아 있는 자리엔,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쳐져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활기찬 소음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는 전혀 닿지 못했다.


아내가 빠졌다는 사실이,

어쩐지 모두에게 미묘한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는 병원에 입원했을 거라고 걱정했고,
또 누군가는 부부싸움 때문 아니냐고 흘려 들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별일 없어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마음속은 얼음장 같았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은 눈앞에 있지만,

내 안에선 모두 흐릿해졌다.
달콤한 김치, 고소한 전, 따끈한 밥 한 숟갈이

입에 들어왔지만, 그 맛은 모두 흐려지고 말았다.



내가 돌아본 시선 끝에는 딸이 있었다.
친척들의 딸들 사이에서 뛰어노는 아이는

여전히 생기 넘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딸의 머리끈은 느슨해지고,

뺨과 손에는 초콜릿 자국이 선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내 말이 위안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모임에 익숙해 보이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나는 낯설고 외로웠다.
아내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

이 방 안의 공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연애할 때 아내는 이 모임을 좋아했다.
언제나 밝고 활달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난 뒤, 아내는 점차 멀어졌다.
이제는 모임 이야기를 꺼내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당신이 다녀와.”라는 말만 남겼다.


그 말에 담긴 무언가를 묻고 싶었지만,
나는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딸을 위해서라도, 그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딸을 바라보며 칭찬했다.
“아빠 닮아서 정말 예쁘게 컸네.
아빠가 잘 키웠나 봐.”


그 말들은 칭찬이었지만, 내 가슴은 고요하지 않았다.
마치 그 말 속에 감춰진 무언가가

내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내 곁의 딸은 너무 사랑스럽고,
그 사랑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식당 안의 빛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창문 밖으로는 노을이 내려앉으며,

바람이 살며시 불어왔다.


그 바람은 내 마음을 쓸쓸히 스쳤다.

밥을 먹고, 흘린 김치를 닦고, 떨어진 숟가락을 챙겼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누군가 손이 빠르다고 칭찬해도,

오늘만큼은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딸은 뒷좌석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부드러운 호흡이 귓가에 들려왔고,

창밖 어둠 속 가로등 불빛이
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사이드미러로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작고 평화로운 얼굴을 보며 마음 한켠이 무너졌다.


딸이 곁에 있지만,

나는 혼자였다.


창밖으로 스치는 빛과 어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음악 소리,
그 모든 게 내 가슴 깊은 곳의 외로움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나는 볼륨을 서서히 낮췄다.
소리조차도 너무 크게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어둠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그리움이,

조용히 퍼져 나갔다.


아내에게는 늦게까지 놀다 왔다고,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별일은 없었지만,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내 마음 깊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