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다섯 가족이 한 펜션에 모였지만,
아내는 그 자리에 없었다.
거실 한켠에서는 아이들이
세찬 바람처럼 자유롭게 뛰놀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지만,
내 마음 한구석까지 스며들지는 못했다.
주방 한편을 차지한 나는
작은 냄비를 꺼내 뚝배기에 갈비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핏물이 흐르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을 채웠다.
핏물이 물에 번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붉은 물결은
내 안 깊은 곳에서
서서히 번져가는 어떤 감정을 닮아 있었다.
큼직하게 썬 무를 칼끝으로 썰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딸이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국간장을 조금씩 떨어뜨리면서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고기를 작게 찢는 손길은
익숙해진 동작이었다.
주방 구석구석에 놓인
그릇들과 재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가끔씩 멈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 사이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어느새 펜션 밖은
부드러운 노을로 물들어갔다.
그 순간,
딸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실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아무도 못 보게 조용히 딸을 데리러 뛰어나갔다.
젖은 옷을 벗기고,
수건으로 등을 닦아주는 내 손길은
말없이 따뜻했다.
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나는 조용히 “괜찮아.”라고만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담으려는 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니,
어른들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배우자 이야기가 왁자지껄하게 흘러나왔다.
“우리 집 와이프, 요즘 좀 조용해졌어.”
“애 낳고 나서 그런가 봐.”
누군가 웃으며 던지는 말에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내 웃음은 그 자리를 메우려는 듯
가볍고 조심스러웠다.
내 눈빛은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고,
내 안에 자리 잡은 깊은 무게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밥을 흘리고, 물컵을 쏟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뛰어나가 닦아냈다.
내 손이 바쁘게 움직일수록,
내 마음은 점점 고요해졌다.
바깥 풍경은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조용히 하나둘 켜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밤의 적막이 더해갔다.
나는 아내가 없는 빈자리를 애써 채우려 했다.
그러나 그 공간은 결코 메워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차에 올라탔다.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바람이 차창에 살며시 닿아 가볍게 흔들렸다.
그 찰나, 내 마음 한켠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어느새 흐릿해졌고,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어두운 그림자뿐이었다.
온 가족이 웃고 떠들던 시간들이
낮게 속삭이며 지나갔다.
그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없는
멀고 먼 곳에 있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손끝은 닿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건
누구도 알지 못하는 깊은 고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