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조용히 오라는 말

by 맑을담

3편. 조용히 오라는 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째다.


금요일 밤이 되면
어쩐지 집에 가고 싶어진다.


퇴근 후, 9시 반쯤 일을 마치고
바로 차를 몰면
밤 11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늘 말했다.

“애 자니까 토요일 새벽에 와.”


늦은 밤에 문을 열고
아이를 깨울 필요 없다는 그 말에

나는 무심히 “응” 하고 대답했다.


차를 세워두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게 문을 열자
뜨거운 어묵 국물이 담긴 커다란 냄비에서
진한 김이 피어올랐다.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입천장에 닿는 뜨거움에
몸이 조금씩 녹는 듯했다.


허기가 살짝 달랠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속에서 자꾸만 번졌다.


가게 한켠 작은 의자에 기대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밖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밤바람이
살짝 어깨를 스쳤다.


얼굴 위로 지나가는 바람결은
낯설고 서늘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새벽 6시가 되면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집에 도착하면
대개 7시 조금 전이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낮게 들리는 내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파문처럼 퍼졌다.


하지만 아침잠 없는 딸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아빠! 밥 줘!”


작고 따뜻한 몸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무겁던 가방을 내려놓고
씻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차가운 반찬들을 훑었다.

데운 밥 위에 계란을 부치고,

살짝 구운 김을 접시에 놓았다.


주방 한켠에 놓인 시계는 7시를 살짝 넘겼다.

그 사이 아내는 이불을 끌어당긴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몸을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머물렀다.


딸은 조용히 식탁에 앉아 내게 물었다.

“오늘은 놀이터 가?”


나는 잠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응, 아빠랑 갈까?”


“엄마는 안 가?”


“엄마는 좀 피곤하대.”


그 말에 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저 바라보았다.


아내는 요즘 자주 피곤해했다.
딸과 나를 함께 보는 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듯했다.


손잡고 나서는 순간마다
아내의 눈빛이 내 뒷모습에 머물렀다.

그 눈빛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딘가 멀고 낯설었다.


한때는 셋이서 함께 나들이를 나가던
주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늘 딸과 나,

둘만의 시간이다.


놀이터에서 뛰놀고, 화장실에 가면
딸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집에 돌아오면 목욕을 시키고, 간식을 챙기는 일도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했다.

“애 아빠가 다 하네. 부인이 참 좋겠다.”

“당신처럼 가정적인 남자,정말 드물어.”


그럴 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부지런해서요.”


하지만,혼자 있을 때면
왜 내가 모든 걸 혼자 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긴다.


왜 자연스레 몸에 익은 걸까.


누군가의 칭찬이 때론 고맙기도 하지만,

한순간 허전함이 가슴 깊이 밀려온다.


식탁 옆에서 딸아이가 틀어놓은 만화 주제가가
조용히 흐른다.


그 노래는

배경음처럼 공간을 채우고,


나는
서서히, 조용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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