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그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댁에서 새해를 맞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창민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젊어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진짜 외모가 중요해지는 건 40대와 50대부터라는 이야기였다. 무슨 얘기냐면 20대와 30대까지는 이뤄온 업적이나 자산, 능력들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설령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밖으로 잘 티가 나지 않는다. 모두가 젊음이라는 같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주름도 얕고, 몸의 균형도 비슷하고, 그 나이대가 갖는 비슷한 혈기가 정신적 물질적 가난을 어느 정도 가려준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누가 조금 더 가졌는지, 누가 조금 더 앞서 있는지가 외모로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40대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경제적, 정신적 자산의 격차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고, 50대부터는 젊음이라는 옷에 가려져 있던 살아온 얼굴과 살아온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표정, 주름, 말투, 태도, 자세, 옷차림, 손짓 하나하나에서 어떤 가치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들. 숨길 수 없는 것들. 선택의 결과가 조용히 배어 나오는 시점.
아직 내가 40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진짜로 그럴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막연한 편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생각할수록 무섭다.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과 표정을 하고 현재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나와 창민이 인생에서 높게 두는 가치는 '쾌적함'이다. 그건 단순히 깨끗함이나 고급스러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긴장이 없고, 산만하지 않고, 모든 것이 관리된 상태에 가깝다. 그 쾌적함을 가장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호텔이다. 매일 호텔에 묵을 수는 없으니 우리는 가끔 호텔 라운지 카페에 간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굳이 그곳을 선택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화려한 티 세트를 시켜놓고 데이트 중인 연인들, 노트북을 열어놓고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그 공간에 앉아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할머니들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시선이 오래 머물게 된다.
물론 할머니들 역시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다. 어떤 분들은 공간과 어딘가 어긋나 있고, 어떤 분들은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한껏 들떠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호텔의 쾌적함과 친절한 서비스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분들이 있다. 단정한 옷차림에, 조용조용 말을 나누고, 오래된 절친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그들은 공간을 소비하기보다 그 공간의 일부처럼 앉아 있다. 튀지 않는데 존재감이 있고, 애쓰지 않는데 어울린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타고난 외모가 예쁜 것보다 나이 들어서 품격있는 외모를 갖추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돈이 많아서도, 호텔을 자주 와봐서도 아닐 것이다. 말의 속도, 몸의 긴장, 주변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정리된 느낌이다. 그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바이브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좋은 집에 태어나서 오랜 시간 부를 누리고 살아왔든, 풍요를 일구고 누리는 삶을 쟁취했든 분명히 그 사람의 외모와 태도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설명하고 있다. 3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40대의 얼굴을 만들고, 40대를 어떤 경험과 어떤 생각으로 채웠는지에 따라 50대의 모습과 태도, 분위기가 결정될 것이다.
흐린 눈으로 일관하던 태도도, 고치지 못한 못된 습관도, 흐릿한 가치관마저 가려주던 젊음이라는 옷이 벗겨지고 내가 무엇을 반복해왔는지, 어떤 환경에 나를 노출시켰고, 어떤 취향을 향유했는지 드러나는 나는 그 순간에 나는 당황할 것만 같다. 신이 있다면 내가 먹었던 술과 안 좋은 생활 습관,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은 좀 눈 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당장의 옷, 당장의 재미, 당장의 만족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선택이 아니라, 40대의 지안을 더 편안하게 해줄 선택들. 내가 사랑하는 쾌적한 공간에 갔을 때 그 공간과 내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드는 습관들. 말투와 태도, 생활의 리듬을 조금씩 정리해주는 기준들.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지만, 지금을 사는 방식이 곧 미래에 사는 방식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현재를 너무 무겁게 생각할 것도 아니지만, 너무 가볍게 여길 문제도 아니다.
'오늘 나의 하루가 미래의 내 살아온 얼굴이 되어도 괜찮은가?' 생각해볼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