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2025년 회고

모든 인생은 밀려왔다 밀려간다.

by 지안느


2025년은 나에게 365일이 아니라 800일 정도 되는 것처럼 길고 느리게 흘러간 해였다. 동시에 2025년 1월의 나와 2026년 1월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낀다.


2025년에 일어난 일 중에는 분명 내 의도로 일어난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쳐온'일들이 많았고, 나는 그 일들을 닥치고 겪는 수박에 없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가장 많이 변하게 만들어준 5가지의 사건을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1.출산

출산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행복한 사건이었다. 물론 몸과 호르몬은 요동쳤지만, 마음은 이상할 만큼 밝고 차분했다. 아기는 생각보다 예뻤고,엄마라는 새로운 페르소나가 마음에 들었다. ‘엄마’라는 페르소나가 나를 갉아먹는 정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옷처럼 느껴졌다.


아기를 낳기로 했을 때 기대되는 것 중 하나가 '아줌마는 겁이없다'라는 사실이었는데 출산을 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것 같았다. 막무가내로 달려든다는 뜻이 아니라, 망설이느라 미뤄두었던 일들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강단있게 밀어붙일 힘이 어디선가 솟아난다. 정말 그렇다.


인생의 비전이 바뀌니 그 하위에 있는 인생의 이유(WHY), 할 일들(WHAT), 삶의 방식(HOW)들이 순식간에 자동으로 재정립되는 경험은 다시 생각해도 신비롭다.


2.엄마의 죽음
지난 6년간 가장 두려워했던 건 엄마가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컨펌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평생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애도의 과정을 걷고 있다. 언젠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글로 써 내려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엄마의 부재를 피하고 있다. 그것 역시 애도의 한 형태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3.운동
올해 나는 이렇게 사람이 안 움직여도 되나 싶을만큼 운동을 안 하다가, 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출산 전에는 자궁 수축 때문에 운동을 완전히 멈췄고, 출산 후에는 주 4~5회 운동을 숙명처럼 이어가고 있다.


극단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그 변화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인생이 어려울수록, 운동하는 시간이 휴식이자 힐링이라는 것을. 몸을 쓰는만큼 마음은 단순해진다는 것을. 올 한 해 역시 ‘운동 할까 말까’가 아니라 ‘오늘은 운동 언제 하지?’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4. AI

지피티와 함께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던 순간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개발과 디자인이라는 장벽 앞에서 늘 막혀있던 내가, GPT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AI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었으니 이제 나는 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낀다. AI를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로드맵을 짜는 것, 질문의 방향성을 잘 설정하는 것이 새로운 성공 전략일테니 더욱 문제에 몰입하고 본질적인 고민을 해야한다.


스마트폰의 탄생, 소셜미디어의 확산, 그리고 AI 시대까지. 이 격변의 시간을 살아가는 세대라는 사실이 문득 감사하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감각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짜릿한 감각이기도 하니까.


5.책 출간
놀랍게도 책을 낸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3년쯤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아 쓴 책이 아니라, 기획부터 계약, 초고와 탈고까지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낸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더 뜻깊다.


출간을 통해 나는 ‘나는 짧은 글만 잘 쓴다’는 오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입덧할때 냉면 육수 먹으면서 글을 썼다는 영웅담도 만들 수 있었다. AI 하나 쓰지 않고 한 땀 한 땀 완성했던 6개월간의 글쓰기 훈련은 나의 글쓰기 실력을 한 단계 높이는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웠는데 나는 내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유명해지고 조명받는 일에는 큰 흥미가 없다는 것. 이 깨달음 덕분에 출간 이후의 선택들을 훨씬 가뿐하게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올해의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동시에 무언가를 받아들였다. 엄마를 보내고 딸을 얻었고, 몸을 잃고 다시 그 몸을 회복했고,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밀물과 썰물처럼 인생이 밀려왔다 또 밀려가면서 내가 걸치고 있던 가짜 옷들을 모두 벗겨간 기분이다.


발가벗겨진 덕에 조금 썰렁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개운하고 후련하기도 한 2025년이었다. 2026년에는 또 어떤 인생이 밀려왔다 밀려나갈지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나'라는 사람은 게속 성장하며 단단해져갈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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