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김익영도자예술
#지안기행
백자과반을 보며, 커피를 마시던 중 궁금함이 일었다. 김익영작가님은 왜 면치기 한 백자를 빚어내시는 것일까.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주말에 '김익영도자예술'에 가볼까?" 평소 구박만 하던 내가 먼저 물어보니 그는 매우 기뻐했다. 당장 내일 가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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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옆에 위치한, 김익영 작가님의 공방은 차분하면서도 정겨웠다. 예쁜 직박구리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
공방에 들어가 둘러보는데, 작가님께서 물어보셨다. 찾는 물건이 있냐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찻잔이 있을지 여쭤보았다. 손안에 감싸져서 온기가 전달 되는 잔. 잡았을 때, 백자의 질감이 오롯이 느껴지는 그런 잔을 가지고 계신지 여쭈었다. 관상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 그런 잔을 찾는다고 말씀드렸다 .
작가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더니, 예전에도 한 손님이 그런 잔을 주문하여 미국에 가져가셨다고 하셨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손잡이 없는 찻잔." 몇 마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작가님께서는 내가 무얼 찾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계셨다. 지금은 그에 맞는 제품이 없으니, 직접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소량을 주문하는 것이라 죄송했는데,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우리 잔을 만드는 것' 그 자체에 눈이 반짝 반짝하셨다. 여든을 넘긴 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소녀같은 순수함과 해맑음이 보였다. '아, 저분은 정말 일을 좋아 하시는구나. 천직이구나.' 싶었다.
김익영작가님의 이력은 조금 독특했다. 1935년에 태어나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했다. 이후 알프레드 요업 대학원에서 도자를 연구하며, 도예가의 길로 접어 드셨다. 요업 '기술'을 배우던 중, 도자를 보며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게되셨다고 한다. 기물에 정성과 혼을 담을 때 '기술'이 '예술'이 된다는 것. 그것을 깨달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도자기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물론 대영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도 소장될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
백자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작가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전통이라는 건 말이예요, 우리 피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거든. 그래서 그 정신이 발현되면 친숙하고 자연스러운거지요." 작가님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홍준 선생님이 그녀를 왜 "한국 도예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킨 사람"이라 설명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조심스레 '면치기를 왜 하시는지' 여쭤보았다. 도자기를 빚을 때엔 과정상 다듬어 주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하셨다. 과거에도 면치는 기법들이 있었다고. 마무리를 다듬을 때에 면을 쳐주면, 모던하지만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도자의 본질은 최대한 유지하되, 오늘날 우리 삶에 어울리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것 같았다 .
전통은 간직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연구하고 뽑아내어 오늘날에 걸맞게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었다. 작가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전통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며 계승하고 계셨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것이 해맑은 미소의 비결일터.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