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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기행 Jun 01. 2021

당신을 위한 커피 한잔

함께하는지안기행 × 그레이그리스트밀

함께하는 지안기행 그 첫 번째 이야기

한 주가 어느덧 금세 지났다. 피곤을 풀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 신사동 그레이그리스트밀로 발걸음을 향했다. 인친분들과 함께하는 지안기행,

그 첫 번째 장소는 그레이그리스트밀이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제공된 커피"를 의미 있는 카페에서 마셔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받고, 그분들의 취향을 바리스타님께 전달하면. 바리스타님께서 가장 적합한 메뉴를 고민하여, 신청하신 분을 위해 만든 커피를 제공해드리는 방식이었다.  

준비를 하면서, 이것 저것 걱정이 앞섰다.

"참석하신 다른 분들이 정말 만족하실까? 혹시라도 실망하시면 어떻게 하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내가 사고 싶지 않을 법함 것은 남에게 권하지 말자고. 최소한 내가 샀을 때 만족하고 뿌듯해야만, 다른 이에게도 권했을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책을 쓰면서 카페를 고를 때에도, 이러한 생각과 기준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시간을 준비하며, 시연을 진행해주실 카페 대표님들께 부탁드리고, 마음에 담았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주말에 귀한 시간을 내서 오시는 분들께서, "정말 기뻐하면서 돌아가실 수 있으시면 좋겠다는 것."

진심으로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을 모시기 위해서, '만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하지만.  그 만원과 귀중한 시간을 할애한 것이 정말 아깝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자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만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 첫자리를 그레이그리스트밀 방준배 이사님께 부탁드렸다. 브루잉 커피를 마시면, 생두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첫 모금에 "우와"가 튀어나오기 어렵지만, 언제 어떤 커피를 마시던지 항상 "우와"를 연발하게 해 주셨기에. 이분의 커피라면, 처음 뵙는 인친님들께 소개해도 손색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8시 30분쯤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인친이신 진호님, 나경님, 쿵이 어머님께서 차례로 오셨다. 처음 뵙는 분들도 계셨지만. 신기하게도 비슷한 인상의 분들이셨다. 활발하고 외향적이기보다는 차분하고 점잖은 분들. 그동안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독자님들이 이런 성향의 분들이셨구나. 서로 모르시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오셔서 신기했다.

이사님께서는 시연에 앞서, 새로 입고된 콜롬비아 생두를 보여주셨다. 향을 맡아보라고 하셔서, 맡았더니 시쿰시쿰한 냄새가 느껴졌다. '엄청 실 것 같은데' 싶었는데, 갓 볶아오셔서 웰컴 드링크로 마셨더니 오, 의외였다. 산미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침샘을 자극하는 정도의 라이트 한 산미가 기분 좋았다. 프레쉬한 커피로 시작하는 스타트. 좋았다.


갓 입고된 콜롬비아 생두와 즉석 로스팅 모습

드디어 본 메뉴를 마셔볼 시간.

첫 메뉴는 을지로에서 금융회사를 다니는 진호님의 메뉴였다. 반듯한 인상을 보유한 젊은 청년 진호님은 커피를 정말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역시나 커피 애호가답게, 핸드드립을 선호하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분들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과연 어떤 커피를 제공해주실까?'

핸드드립을 선호하는 진호님의 커피는 역시나 핸드드립 커피였다. 너무 심플한 것이 아닐까? 우려했지만 원두는 개성 있었고, 추출 방식 또한 상당히 특이했다.

칼륨 비료를 사용하여, 단맛을 증대시킨 에콰도르 원두. 그 원두를 추출한 커피물을 한번 더 투과시켜 단맛을 끌어올리는 것이 포인트였다.

칼륨비료를 사용하여 단맛을 증대시킨 에콰도르 원두

"어머. 커피물에 커피물을 더하면, 커피의 잡미가 나오지 않나요?"라고 질문하자, 이사님께서는 그 잡미가 나오기 직전까지. 시간과 용량을 맞춰 내리는 것이 이 레시피의 포인트라고 하셨다.


한 모금을 마신 진호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와, 정말 달아요. 그런데 정말 잡미가 하나도 없이 깔끔해요." 궁금했다. 과연 저 커피는 어떤 맛일까?
여러 핸드드립 맛집에 다녀오셨던 진호님의 마음에 아주 쏙 든다니. 궁금함에 입맛만을 다셨다.

두 번째 메뉴는 여의도에서 금융사를 다는 쿵이 어머님의 메뉴였다. (쿵이 어머니는 엄청 크고 귀여운 비숑을 기르신다.) 사실 쿵이 어머니는 나의 예전전 회사 헤드셨다. 회사를 이직하고도, 연락을 계속할 만큼 좋은 인성을 겸비하신 분이지만. 음, 회사에서는 단 0.1mm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으시는 분. 정말 정확하신 분이었다.

쿵이 어머님의 메뉴를 이사님께 부탁드리면서, 여러 차례 강조드렸다. "단 0.00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과연 어떤 메뉴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이사님께서는 국가대표 선발전 시연에 사용했던 카푸치노를 준비해주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응 카푸치노? 내가 아는 카푸치노는 하얀 우유 거품이 수북이 올라가, 입술에 거품이 묻는 그런 음료인데. 밀크 비버리지라고도 불리는 대회용 카푸치노는 거품이 1cm가량 되어야 해서, 폭이 1cm인 티스푼으로 밀어도 아래 거품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회용 카푸치노는 0.1mm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만큼. 특별히 쿵이 어머니를 위해서 이 메뉴를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볼리비아 피베리를 사용해 만든 오차없는 카푸치노

쿵이 어머님께서는 대회용은 맛이 없지 않겠냐며 살짝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셨지만, 한 모금을 마시고 딱 한 문장을 이야기하셨다. "와, 정말 맛있네요." 오랫동안 뵈어왔지만, 쿵이 어머니가 "오, 맛있다."라고 표현하신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돌아가시는 길, 어떠셨냐고 여쭙자. 커피를 마시면서 많은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은 이런 것임을 느끼셨다고 하셨다.  업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카푸치노의 맛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세 번째 메뉴는 나의 메뉴였다.

맨날 맨날 첫 번째도 가성비, 두 번째도 가성비를 외치는 나에게. 이사님께서는 한 가지 원두로 두 가지 메뉴를 한꺼번에 제공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좋은 생두를 쓰면, 아무래도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가격이 상승하는 만큼, 기대치도 함께 올라간다고 항상 툴툴거리는 내게 이사님께서는 커피 한잔 분량인 원두 20g으로. 두 가지 메뉴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원두를 너무 끝까지 다 사용하면, 뒷맛 때문에 텁텁해지지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이사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최근에 그레이에서는 정수필터를 교체했다고. 새로 교체한 나트륨 이온 필터는 커피 성분이 보다 더 잘 나오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추출 끝까지 맛있는 성분들을 뽑아낼 수 있다고.

오, 이해하기 다소 난해한데. 과연 어떨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메뉴를 기다렸다. 원두는 코스타리카 델라뇨 농장의 원두였다. 시나몬 향이 매우 맘에 드는 무산소 발효 원두. 나의 앞에는 유리컵 두 잔이 놓였다. 첫 추출은 에스프레소에 바닐라크림을 얹은 콘파나로. 두 번째 추출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준비되었다.

하나의 메뉴로 두가지 커피를. 커피만으로 디저트 페어링을.

바닐라 크림을 얹은 콘파나를 한입 톡 털어 넣었다. 크림의 단맛과, 에스프레소의 밀도가 집약된 짠맛이 잘 어우러졌다. 진정한 단짠단짠의 메뉴. 커피를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한입 먹은 것 같았다. 이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부드럽게 입가심을 할 수 있었다. 시나몬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뱅쇼 같은 커피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커피만 마셨는데, 디저트 세트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생두를 정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사용한 훌륭한 페어링이었다.

마지막 메뉴는 나경님의 메뉴였다. 큰 커피 기업에서 일을 하시다가, 퇴사 후에는 스쿠버다이빙 교육과 카페를 직접 운영하고 계신 나경님. 덕업 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 멋진 라이프를 즐기시는 분이셨다.

 카페 업을 정말 잘 알고 계신 분께 만족스러운 커피를 제공해드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경님의 메뉴가 궁금했다. 준비된 메뉴는 카페오레였다. "그거 밍밍하지 않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이사님께서는 웃으셨다. "그게 포인트입니다."

이사님께서는 브루잉을 했지만, 조금 진하게 내린 커피에. 저온스티밍을 한 쫀쫀한 우유폼을 올렸다. 우유를 먼저 마셔보라고 하셔서 마셨더니 밀도가 있으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쫀쫀한 우유가 들어간 카페오레

얼음 위에 우유와 커피를 부어 제공해드리자, 한 모금 마신 나경님께서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전혀 밍밍하지 않아요. 맛있어요." 나경님은 그 뒤에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이 카페오레가 맛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저온 스티밍을 해도 녹지 않는 얼음도 한몫한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적합한 우유의 상태를 찾기 위해 8번의 시행착오를 거치셨다고. 국가대표 바리스타는 언제나 만들면 뚝딱하고 맛있는 음료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국가대표라고 할지라도,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만,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마신 커피 한잔이,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니.

커피를 마시고, 새로 출시된 콜드 프레소까지 선물로 받고 나오는 길. 함께 참석하셨던 나경님께서 운을 떼셨다.

"저는 이곳 그레이를 혼자 여러 번 왔어요. 아까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신 것처럼 혼자 사색하기도 했도. 책도 읽었는데. 그게 매장을 오픈할 때부터 계획되었던 것이었군요.

[넓게 가는 것도 좋지만, 깊고 곧게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사실 더 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잔 한잔 손님을 위해 정성껏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결국 모든 업에 기본이 되겠지요.


첫회를 마치고, 정말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역시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삶을 좀 더 진정성 있게 대하고자 하는 진정 어린 비타민도 함께 섭취할 수 있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커피 한잔을 함께 즐겁게 마실 수 있었던 소중한 토요일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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