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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Jan 23. 2020

현대적 향유의 해석 - Instagrammable

SNS가 바꿔놓은 현대의 향유 

 얼마 전,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진행되는 ‘뮤지엄 오브 컬러’ 전시에 다녀왔다. 해당 전시를 알게 된 건 우연히 들른 카페에 놓여 있던 홍보 브로슈어 덕분이었는데,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블루 섹션’ 전시가 궁금해졌다. 마침 팬톤(Pantone)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가 ‘클래식 블루’이기도 하고, 파란색뿐만 아니라 색상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감에 부풀어 자세히 찾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찾아갔다.  


 토요일 3시. 사람들은 바글바글했다. 입장료는 15,000원이었지만 통신사 앱을 통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할 수 있어, 마침 해당 통신사 고객인 지인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아, 탄식이. 



 인스타그램은 여러모로 우리의 삶을 바꿔주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예쁜 식당에 들어가고, 과거 그냥 지나쳤던 예쁜 풍경을 보면 사진에 담아 해시태그와 함께 스토리 혹은 피드에 올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명함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고받는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 

 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감성 사진, 혹은 예쁜 사진을 뜻함)’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instagrammable 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인스타그램 용 시각을 갖추게 되었다.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그 어떤 SNS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왜 SNS를 쓰지 않냐고 굳이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SNS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진 적이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 내 일상을 아는 것도 싫고, 내가 어디에서 뭐 하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도 싫어"라고 답했다. 충분히 이해 가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지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내 친구 표현을 빌리자면 ‘어떻게든 자신의 일상을 알리려 발악하는’ 소위 ‘헤비 인스타그래머’였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충분히 SNS를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한 사람의 생활이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한 SNS가 가진 매우 신기한 파급력이 아닐 수 없다. 한창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 무모한 짓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들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실 아직도 그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심리 전문가, 사회 전문가들은 그들의 행동 이유에 대해 ‘외로움’ 혹은 ‘소속감의 부재’ 등을 이유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SNS가 등장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사람들이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이유가 여전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개인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SNS 사용은 여러 산업 분야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성수동에서 내가 봤던 전시는 ‘Instagrammable Exhibition’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색에 대한 다양한 정보보다 다양한 색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 좋게 만들어 놓은 거대한 포토존과도 같았다. 물론 아티스트의 작품도 걸려있긴 했지만, 해당 전시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보이진 않았다. 사진을 찍느라 길게 늘어선 줄을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향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전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향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제대로 된’ 전시란 있는 걸까? 제대로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 혹은 예술 분야 전문가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향유자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예쁜 옷을 입고 나온 날, 나 스스로가 전시장에 존재하는 하나의 피사체가 되어 ‘인생샷’을 찍는 것 또한 향유일 수 있다. 그 전시장에 가서 제대로 된(여기서의 ‘제대로’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집에 나서기 전부터 사진에 잘 나올만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는 그 모든 준비 또한 이미 그 전시를 향유하기 위한 중대한 작업이 되었다. 그전에는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작품을 보고, 3인칭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던 과거형 향유가 존재했다면, 현대적 향유는  예술에 일부분으로써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 Instagrammable 한 것들을 고르려 곤두선 우리들의 새로운 향유 문화가 되었다.  



 나 자신은 그런 현대적 향유에 아직 익숙지 않다. 그렇다고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지는 않다. 이 또한 향유의 변화이고, 소비의 과정이니까. 내가 그런 취향이 아니라면, Instagrammable Exhibition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젊은 꼰대처럼 나는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것 마냥 눈살을 찌푸리는 입장에 서고 싶은 생각도 없다.  


 혹시나 해당 전시 관계자 혹은 누군가 이 글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면 오해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그저 색에 대한 정보를 보고 싶었던, 사람들로 꽉 막힌 공간을 싫어하는,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애용하고 있는 한 사람의 투정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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