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를 기리며
분명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뿐만 아니라 숨겨진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며 크게 티 나지 않게 묵묵히 일한 사람들이 그러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JR(Jean Rene)’는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조명한다. 프랑스 영화감독 겸 아티스트인 바르다와 프랑스 사진가 JR이 만나 함께 콜라보로 예술 작업을 하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더 일깨워주고 있다.
오래된 광촌에 있는 광부들, 우체부들, 공장의 직원들,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마을의 마지막 거주자 등. 쉽게 볼 수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분명 우리가 조명하지 않고 뉴스에서 멀게만 바라보던, 아니면 아예 바라볼 기회조차 없었던 그들이 예술 작업의 주인공이 되었다.
JR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거대하게 프린트하여 벽에 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그리 대단하고 거창한 작업은 아닌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그 결과물에 매번 감동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 그가 아녜스의 눈과 발을 찍어 거대하게 프린트한 후 화물차에 붙였던 것. 올해 세상을 떠난 아녜스는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당시에도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은 상태였고, 그로 인해 시력이 매우 악화돼있는 상황이었다. JR은 그런 아녜스의 눈을 찍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화물차에 붙인 후 그녀를 여행길에 떠나보낸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만 해도 아녜스는 살아 있었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아녜스를 생각해보면 JR이 그녀를 위해 한 작업은 아마도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JR이라는 아티스트를 잘 몰랐어도, 아마 이 장면 이후에는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그다지 대단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왜 그 과정과 결과물들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커다란 감동을 주는지 많은 이들이 더 깊게 공감하게 됐을 것이다.
JR이 누구의 사진을 찍었고, 왜 찍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프린트하여 어디에 붙였는지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 개별적 작품이 된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작업들을 했는지 좀 더 알고 싶다면 그가 TED에 나와 이야기한 영상을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예술은 자유롭다지만, 사회적으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던 1960년대에 아녜스는 당시 집중받지 못했던 여성들을 조명하며 당시 여성 감독으로서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녀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을 주목하여 예술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냈다.
그녀가 사회적으로 해냈던 역할, 그리고 JR이 현재 사회에서 하고 있는 역할. 물론 둘 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위해 혹은 엄청난 화두를 던지기 위해 작업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 그들이 이뤄왔던 많은 작업들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심적인, 육체적인 자유를 얻게 된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술이 본래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게 일조한 이들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