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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Jun 01. 2020

00. 마흔은 그런 나이 아닙니다

  치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다음 예약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다.


“이지아 님!”

“네!”

“이지아 님!”
 “네!”

“이지아 님이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확인하는 직원이 이상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려던 참이다.


“네에~!”

“77년생 이지아 님이요? 어머?! 왜 이렇게 동안이세요? 전 얼굴 보고 아닌 줄 알고 몇 번이나 확인했잖아요!”

  

호들갑스러운 직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호들갑스럽긴 하지만  분명 진심을 담은 말투와 표정이었다. 기분 좋게 예약을 마치고 치과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암~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그 직원 어린데 보는 눈은 있네!’

 

룰루랄라 좋았던 기분에 갑자기 현타가 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깐! 내가 정말 동안인 거야? 아니면 겨우 20대 초중반의 직원은 40대의 여자를 잘 모르고 있는 거 아냐?!"

  

나의 스무 살을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40대의 여자에겐 관심 같은 것은 없었다. 결혼한 사람은 모두 ‘아줌마’고 ‘아줌마’는 다 거기에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제3의 성’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에는 20대의 삶은 너무 재밌었고, 너무 고단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늘 버라이어티 했다.


  그러니 그때 내가 갖고 있던 40대 아줌마의 겉모습은 아마, 병원 직원이 그리던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으리라. 머리는 짧은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적당히 살집이 오른 몸, 편하게 대충 입은 옷 스타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아마도 내가 그리던 40대 여성의 모습 이리라. 아, 나는 그때 정말 우리 엄마는 청바지 같은 것은 입지도 않은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시절, 습작품 중에 ‘그녀, 서른일곱’이라는 제목의 대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그 대본을 쓰게 된 이유는, 광고 카피 한 줄 때문이었다.


[스물일곱, 여자가 가장 아름다울 나이]


  그 카피를 생각하면서, 나는, 가장 아름다울 나이를 지난 10년 후, 서른일곱의 여자를 떠올린 것이다. 삶에 대한 어떤 열정도 없고, 재밌는 일도 없고, 뭔가 시든 꽃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자.


  그때 드라마 대본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물었다. 왜 서른일곱이냐고.

서른일곱에는 삶에 대한 열정도 없고, 어느 정도 삶을 알아서 모든 것이 별 의미가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던 스물일곱의 교육생을 쉰이 넘은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새삼 이제야 부끄러워진다.


  마치 삶이 끝났을 것만 같다고 여긴 나이 서른일곱에서 나는 어느덧 7살을 더 먹었다. 삶은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고, 또 여전히 많이 고단하다. 그럼에도 신나는 일들도 많고, 여전히 여자로서도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


  스무 살의 청춘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생각할 때도 있지만, ‘쟤나 나나 뭐, 비슷한데?’ 생각하고, 아직도 잘 생긴 청년을 보면 혼자서 가슴 설레기도 한다.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누가 ‘아줌마!’ 하고 부르면 듣는 아줌마 입장에서 기분 나쁘고, 마트에서 젊은 청년이 ‘어머니!’하고 부르면 많이 슬퍼진다.  


  ‘내 나이에 이러면 안 되지~’ 싶다가도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는 마흔넷의 나. 결코 내가 젊은 시절에 생각했던 그런 나이가 아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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