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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 Jul 17. 2022

스포트라이트

주변이 소멸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나?

길을 가다 견주와 산책 중인 개들을 만나면 줄곧 정신이 팔린다. 국어사전에 '정신이 팔린다'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을 정도로 정신이 쏠리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해야 할 일을 잊을 정도로 주의와 관심이 어떤 것에 사로잡혔음을 의미한다. 개들을 볼 때면 나는 타야 할 버스를 놓치고, 동행자의 말소리가 음소거된다. 그렇게 개들은 나의 정신을 사 간다. 왜 그런지에 대해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이유 하나,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이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이는 귀여운 것을 보면 꽉 주물러서 터트려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 반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출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개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근본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그들은 타자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동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무의식적 생각에 그들을 인간의 행복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냥 물밀듯 올라오는 물고 빨고 뽀뽀하고 안고 싶은 충동에 정신이 팔려 그저 그윽하게 바라볼 뿐이다. 개들은 나의 이런 음침한 마음을 알는지.



 다른 이유 둘, 나랑 너무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사족보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몸이 털에 덮인 것, 귀가 늘어져있거나 서있는 점, 코가 젖어있고, 구강이 돌출되어 있어 물을 머금지 못한다는 점, 엉덩이 사이에 튀어나온 꼬리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 엄지발가락이 발목 부근에 나있는 점 모든 것이 나랑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가끔 보면 외계 생물체를 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이렇게나 다른 생물체를 인간이 과연 '양육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르다는 것은 '다른 것'일 뿐, 멸시나 정복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최근에는 애완동물이라는 표기법을 사용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다. 애완이라는 의미는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해서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을 뜻한다. 동물도 하나의 생명체다. 인간과 똑같이 숨을 쉬고 자아가 있는 생명체를 인간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즐기는 것은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 사고이다. 하물며 즐기다가 질려서 유기하는 인간은 어떠한가. 그렇기에 '애완'이라는 단어보다는 함께한다는 의미를 지닌 '반려'를 대체하여 쓴다. 아무튼 인간인 나와 너무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쳐다보게 된다.



며칠 전 두 마리의 개에게 또다시 정신이 팔렸다. 견주와 산책 중인 두 마리의 개가 한 길목에서 마주 보고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걸음에서 후각 활동을 하다가, 서로가 서로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어떤 플러그에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서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고, 끌려갔다. 견주의 저지에도 소용이 없었다. 목줄에 목이 졸려도 아무렴 상관이 없어 보였다. 인간인 나로서는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 방법이 없지만 대략 상상해 봤다. 매일같이 보는 인간들이 아닌, 본인과 똑같이 사족보행을 하고 털에 덮인 존재를 만나서 신기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들을 정복하기 위해 꾸민 최종 전략을 공유할 동지를 만나 목줄에 목이 졸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만나야 했던 것일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기에 나는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했다.



내가 매료되었던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보낸 강렬한 관심과 시선이었다. 영화 '가장 따듯한 색 블루’의 초반부에, 아델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에마가 자주 출몰하는 바에 들어가 그녀를 찾는 장면이 있다. 어둡고 혼잡한 바에서 서로를 알아보고는 대화를 시작하는데, 이때 주변은 조용해지고 서로가 있는 테이블만을 스포트라이트로 비추며 연출된다. 주변이 소멸되고 둘만이 남게 되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 영역. 서로에 대해 강렬한 애착과 관심이 없으면 만들어내기 힘든 공간이다. 내가 본 그 두 마리의 개 역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인에 의해 몸이 들려도, 목줄에 목이 졸려도 물러서지 않는 시선으로 견고하게 둘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구축한 곳에서 교류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을 주고받았을까. 나와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의 행동들을 관찰하며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누구와, 그리고 어떤 것과 그런 세계를 만들 수 있으며 또 그곳에서 어떤 것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상상했다. 주변을 소멸시킬 정도로 강렬한 관심을 기울일만한 능력이 내게도 있나 생각했다. 그들에게 팔린 정신은, 나의 좁디좁은 세계를 아주 조금이나마 확장시키는 값어치를 했을까. 나의 정신이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싶다.



내 정신을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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