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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 Sep 11. 2023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며칠 , 불안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현재 나의 상황과 환경이 너무 버거웠다.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쉬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처음 겪는 성장통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오늘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까마득하게  내려가다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눈이 핑-하고 돌더니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운 글자들이 화면을 뚫고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비슷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목구멍 위까지 올라와 쿵쾅댔다. 토할 것 같았다. 가슴이 조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일단 노트북을 덮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바사나 음악을 들으며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필이면 회사원들의 퇴근시간과 맞물렸고, 온갖 사람들의 피곤에 전 냄새와 잡담 소리, 번쩍이는 불빛들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온 힘을 다해 예민함을 중화시켰고 거의 탈진할 때쯤에서야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 지난날의 불규칙한 삶과 불건강한 생각들을 탓하며 증상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다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겠지. 운동을 하면 괜찮아질 거야. 따위의 다짐들을 늘어놓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새로운 다짐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오래 자버렸다. 눈을 떠보니 5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어느새 호이가 퇴근을 했다. 나는 호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로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나를 달랬다.



 호이의 손이 따듯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의 손은 금방 뜨거운 핫팩을 쥐었던 손처럼 따듯하다. 그 손으로 눈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닦으며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으레 하는 위로의 말로 일단 나의 눈물 꼭지를 잠그고는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몇 분 정도 지나 나는 마음의 평온을 찾았지만, 나를 쓰다듬는 호이의 손은 여전히 따듯했다. 그 온도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무한하게 생성되어 소진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사랑을 원동력 삼아 살아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다. 애정을 갖고 상대를 보살피는 마음, 상대의 감정을 진실로 헤아리려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이 마음들은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사랑은 무한히 생성되는 자원과 같아서 마음껏 써도 절대 고갈될 일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많이 쓰면 쓸수록 더욱 강하고 힘 있게 솟아오른다.



 내 가슴 한편에 이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호이를 통해 깨달았다. 그가 내게 보이는 무한한 애정과 사랑은 내 안에 숨어있던 사랑의 분화구를 뚫어주었다. 흘러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사랑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주 늦은 저녁을 시켜  배부르게 먹었다. 그러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 웃으며 장난을 치다가 꼭 껴안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폭포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호이는 출근을 했고, 나는 방에 혼자 남겨졌다. 간밤에 흘린 눈물 때문에 눈덩이는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상쾌했다. 막혀있던 사랑의 분화구가 뚫려서 그런가 보다. 식물에게는 빗물이 가장 좋다는 얘기가 떠올라 하나밖에 없는 밥그릇을 창틀에 내어놓았다. 이참에 영양제도 사 왔고 예쁘게 분갈이도 해줬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식물들을 애정 묻은 손길로 돌보며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나만의 사랑을 키웠다.



사랑은 증식하는 성질이 있어 나누지 않을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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