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7
우리 집 책장에는 크게 두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다.
민음사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하루키, 히가시노, 박준 등의 문학서적들이 와이프 눈높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 경영, 인문, 역사를 다룬 비문학 서적들이 그보다 한 칸 높은 내 눈높이서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요즘 들어 문학서적들에 대한 편식이 심각하다 생각이 되어 와이프 서적 칸을 호시탐탐 주시하며 한 권씩 빼서 보고 있는데, 솔직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문학감성에 대한 결여가 심각단계에 왔음을 자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에게 문학소녀(?)가 추천해준 작가와 책. 바로 성석제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책을 완독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성석제의 문체는 빠르고 이야기는 재밌다. 접속사 없이 단문들을 숨 가쁘게 이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 식어버린 밍밍해진 커피를 마셔버리기 일수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일곱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며, 책의 제목은 첫 번째 이야기다.
황만근은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인간이다. 시내에서 농촌 시위에 참가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일을 두고, 그가 주변의 눈길들, 때로는 조롱 섞인, 사이에서 묵묵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선에서 황만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살아온 세월이 긴 나로서는 사투리를 글로써 이렇게 구수하게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내가 고딩어를 안 먹는다 캤으마, 이런 일이 없을 낀데. 내가 고딩어를 안 먹는다 캤어도 이런 일이 없을 낀데. 내가 고여히 고딩어를 먹는 캐가이고 우리 만그이가, 우리 만그이가 고딩어를 사러 갔다가 이래 안 오는구나아."
책을 읽으면서 문체 그대로 따라 읽어봤던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재밌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때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려진 황만근의 삶을 보면서, 그의 살았던 공간과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같은 듯 다른 느낌이다. 같은 마을 안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지만, 다른 평균적인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게 바라보며 다른 세계를 살아온 듯한 느낌.. 악의 하나 없어 보이는 듯 한 마을 사람들의 구수한 대화들 속에서, 굿굿하고 묵묵한 황만근이 상상되면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느낌은 조금 서글프고 서운하기도 하다.
가볍게 읽고 가볍게 덮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이야기 깊은 곳에는 우리 삶의 진실이 있다.
성석제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손이 가는 데에 주저함은 없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