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2020_8

by 홍실장

알베르 카뮈의 소설이 다시 읽히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잠시 또 유명세를 타는 '페스트'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카뮈=이방인 이란 공식은 늘 역사였다. 유행은 자꾸 돌고, 트렌드 역시 계속 바뀌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은데, 고전소설을 찾는 분위기만은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입관을 했습니다만, 보실 수 있도록 나사못을 뽑아 드려야죠." 그러면서 관으로 가까이 가려기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안 보시렵니까?" 내가 대답했다. "네." 그는 말을 뚝 끊었고, 나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랬구나 싶어서 난처해졌다. 조금 후 그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그러나 나무라는 어조는 아니었고, 그저 물어나 보자는 듯했다. 나는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쁜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렇다고 선한 거짓말까지도 아닐진대, 그런 거짓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양로원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뫼르소. 소설은 그 장례식을 시작으로 그의 지적/물적/영적 가난(?)의 생활을 보여준다. 물론 뫼르소 본인은 가난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도 같지만.. 그리고 우연하게 아랍인 한 명을 총으로 쏘게 되고, 그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얼핏 보면 뫼르소는 요즘 말로 사이코패스나 사회 부적응자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이방인"일뿐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 부적응자로 까지 말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그에게 어찌 보면 가혹하다. 무슨 이유였던 간에 살인을 한 것은 잘 못 된 것이지만, 어느 정도 정당방위로 판결이 될 수 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선고하는 사법부의 행위는 마치 사회적이지 못한 뫼르소의 행동에 대한 판결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의 죽음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상을 당했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런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그런 행동 따위를 재판하고 단죄하는 인상이다.


우리가 예절 혹은 예의라고 하는 사회통념상 일반화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결론이다. 지금 시대에 비해서 훨씬 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이기는 하지만, 만약 뫼르소가 지금 시대에서 저런 행동들을 했다고 해서 사회는 그를 온전히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특권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방인에게만 있는 '이방인'특유의 문체로 인해서 편하게 읽지는 못한 것 같다.

특히, 사형집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사제(종교인)와의 대화 장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을 시원하게 울부짖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뭔가 모를 가슴속 응어리가 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던 것을 보면 한 사회의 부정이나 부조리에 대한 나의 문체 또한 그리 편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에게도 '이방인'과 같은 목소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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