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평/불만을 갖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소중함을 잊은 채 우울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며, 무언가에 매몰되어 그것만 찾아 헤매듯이 좋지 않은 것들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동안 기억하지도 못했던, 먼 옛날 케케묵은 과거 속에서 암울했던 지난날들까지 떠올려진다. 그 상황 그리고 그 순간이 몸서리치도록 싫지만,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다.
평소 여느 때와 같이, 어제도 입었었던 옷을 걸치고, 약간은 다르게 분위기를 달리 해보려 했지만 누가 봐도 어제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갔는데.. 분명 어제보다 활기차고, 어제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밝게 나왔음에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 있어?" "요즘 뭐 고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뭐 고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질문과 걱정은 나의 리듬을 다시 어둡고 쓸쓸한 긴 터널로 인도한다. 밝은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두운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거늘, 나도 모르게 기분에 인색해지곤 한다. 성격이라는 게 대부분 생존에 이점이 있어서 발달된 것이라, 40여 년을 밝고 어두움 사이 딱 중간쯤 돼 보이는 언저리에서 버티게끔 발달된 유전자로 살아왔는데, 이럴 때가 딱 그런 때이다.
감히 생각해보건데, 우울함은 밝음보다 편하다. 몇몇 천성이 정말 밝은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내 기준으로 보면 분명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백배는 편하고 쉽다. 사람이 어두워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 따위는 상관이 없다. 그 어두움이 밖으로 노출되거나, 누군가에게 전이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혼자 있으면서, 그 따위로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것이다. 마치 사춘기 시절, 아주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났지만, 또 그리 대수롭지 않게 그 짜증을 표출하고 행했던 것처럼, 어려운 것보다는 쉽고 편한 것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성이라는 것을 키워오면서, 우린 쉽고 편한 것들을 자제한다. 내 그릇의 크기가 10이라면 9에서 9.5는 늘 불편한 것을 담는다. 짜증도 좀 내고, 불평불만을좀 얘기해도 될 텐데, 늘 누르기만 하니, 그 속이 썩어 문드러져 항상 두통약을 달고 사는 것이다.
주인공과 우리의 사춘기는 많이 닮았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알만한 그리 나쁘지 않은 학교에 다니며, 아주 평범한 친구들이 있는 기숙사에서 그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사건들로 매 순간 버라이어티 한 삶을 보내고 싶다. 이성에 한참 관심 많을 나이일 테니, 적당한 장소에서 아주 적당한 타이밍에 아주 아주 적당한 연애를 하고, 담배와 술과 같은 것으로 어른들의 흉내를 내면서, 그 시절 그때 가장 중요한 일들(어른의 시각에는 소소한 것들)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지나면 별것 아닌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여 별것으로 만들고, 그 별것을 하는데 목숨을 건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게 좋고, 둘보다는 떼거지로 하는 것이 낫겠다. 1의 재미에 100 재미를 느끼고, -1의 좌절에는 -10만큼만 우울함만을 느끼고, 다시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은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부유해서 좋은 것 따위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학교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면, 당장이라도 수백 가지의 이유를 들어 학교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기숙사에는 멍청하고 지저분한 녀석들이 득실득실하고, 뭐 가끔 괜찮은 순간일 때도 있지만, 그 순간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녀석은 쓰레기다. 갑자기 이성이 보고 싶어 연락을 했다가도, 수준 낮은 대화에 신물을 느끼고는 매서운 말을 해대기 일수고, 담배와 술은 항상 함께 한다. 지나면 별것 아닌 것들은 그 순간에도 별것 아닌 것으로 관심이 없고, 그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일 따위를 하는 것은, 저 쓰레기들(학교, 친구들)과 같기에 하지는 않지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누구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고, 재미있는 일의 뒷면에는 늘 한심하게 느껴지는 우울함이 함께 한다.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 청소년의 2박 3일간의 성장소설이다. 아니 성장은 모르겠고, 불평, 불만 드라마다. 주인공이 보는 것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의 문자들을 책으로부터 머리로 옮겨와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지만, 사춘기로 보이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 속에서 겪는 복잡한 심정이 잘 묘사되어 '표현의 기술'을 느끼게 해 준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그렇듯이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생각들로 채워져 있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ps.. 올해 첫 구세군 냄비를 봤다. 5천 원짜리를 꺼내려다 실수로 만 원짜리를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