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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Jan 04. 2021

당선, 합격, 계급

2021_1 (열여섯 번째 서평)

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쪽은 합격자들의 세계다.



언젠가, 누군가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술을 먹은 날이 아닌, 술이 우리를 먹은 날이라, 가끔씩 혀가 꼬이고 말이 길어지는 도돌이표 대화에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그 사람 얘기의 포인트는,

"대한민국에는 아직 계급이 존재한다"였다. 

'빌어먹을' 이란 단어와 함께..



계급이라고까지 비관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많이 간듯한 느낌도 들어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열띤 그이 의견을 들으며, 소주의 쓴맛을 소화제 삼아 삼키고 있었는데,  문득 나는 전생에 어느 계급이었고, 또 지금은 어느 계급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기반으로 하여 짐작해보면, 글공부 따위는 저 멀리 던져두고 여색에 빠져 기생집을 드나들며 집안의 가세를 뒤집기 중인 양반 아니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에서 물을 한껏 뿜어내며 칼을 휘두르는 천민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좀 봐주고 봐줘서, 시장에서 지역 호구들 등살 빼먹는 얍삽한 상인 정도.. ㅋㅋ

이러나저러나 좋은 전생 따위는 아닌듯하여 상상을 멈추고 '계급'에 대한 그의 비판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렇게 비관적인 성향을 가진 이는 아니기에, 매몰차게 '비관론자'로 단순 치부할 수는 없다. 단지, 근래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비판하는 자세에서 '계급'이라고 하는 이런 무서운 단어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그의 의견을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도, 왜 그런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반복될까?라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던 날이었다. 



여전히 궁금한 그날 문제의 답을 이 책에서는 '시험에 대한 경직성'을 꼽는다. 

한번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다시는 지망생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경직성'.

너도 나도 시험에 매달려 앞뒤 재지 않고 오직 합격(pass)을 위한 목적만 보며 달려왔으니, 그 목적을 달성하여 지망생의 세계에서 합격생의 세계로 이동되었을 때 그 기쁨이야 오죽할까.. 그 기쁨도 잠시, 세상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거라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할 때, 조직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시험문제를 던져준다. 그 시험에 따라서 조직 내에서 꽃밭을 걸을 수도 진흙길을 걸을 수도 있으며, 한번 합격생의 세계로 온 지원자는 다시는 지망생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경직성으로 인해, 그 조직이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며, 불법적인 일을 할지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 

대기업 총수들의 각종 탈세, 이른바 힘(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국회의원, 행정관료, 사법기관)의 각종 특혜와 비리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원인일 것이다. 분명 그 조직 안에서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 또한 다시 지망생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경직성으로 인해, 눈을 질끈 감고 합격자들의 지위를 단단히 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다시 지망생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나 도전이 아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실패이기에, 오히려 더 단단하게 조직에 일원화되어 앞장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 '사회 경직성'이다. 








지은이 장강명은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각종 문학공모전과 입시/공채 문화의 현실을 보여주며, 취재에서 나온 팩트를 중심으로 현실과 대안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수능'과 '9급 공무원 시험' 다음으로 지원자가 많다는 'GSAT'시험을 통해 보여주는 현실은 조금 씁쓸하기까지 하다. 제너럴리스트는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스페셜리스트는 찾기 힘든 우리나라의 공채 문화. 진정 이것이 기업이 여러 매체를 통해 추구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개성 넘치는 인재를 찾는 기업문화인가 싶다. 


쫌 아쉽다. 

각종 문학공모전에 대한 얘기를 통해 알게 된 우리나라의 문학시장의 그늘이 아쉽고,

너무나 잘 짜여 익숙해져 버린, 공채 문화가 만드는 '끼리끼리'문화와 '경직성'이 아쉽고,

별로 달갑지 않은 전생이 떠올라 버려서 아쉽다. 

또 악평이 존재하지 않는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서평들에 이야기할 때, 그들이 가진 '체면'이나 '명성'따위는 있지도 않음에도, 비평을 하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가장 아쉬웠다. (실제로 몇 달 전 '더 해빙'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 실망을 하였지만, 서평에는 그 기분을 다 담지 못했었다) 



영화 평론가나 영화 담당 기자들은 신작 한국 영화에 대해 아쉬움도 표하는데, 한국 소설에 대해서는 그런 쓴소리가 잘 안나온다. 소설가로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독자는 신문서평을 눈여겨보지 않게 된다. 늘 엇비슷한 호평만 접하게 되니까..


때론 솔직한 '쓴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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