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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May 21. 2021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_06 (스물 한번째 서평)

작가. 구병모.

다른 보통의, 평범한(그 기준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사람들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고,

글을 읽는 데 있어 남들보다 문장 이해력이 떨어져 어려운 글을 맞닥뜨렸을 때 소화력이 급속히 저하되는 무지렁이여서 그런지, '구병모'라는 이름 석자가 떡하니 인쇄되어 있는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머리에 '도전'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다.


오래전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란 책을 읽었을 때, 단순하게 판타지/미스터리한 책일 거란 생각에 가볍게 종이를 넘겼다가, 그 예사롭지 않은 전개에 다소 당황하고, 예사롭지 않은 표현에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제목부터 장르를 알 수 없는 이 조그만 사이즈의 책에는 또 어떤 당혹감을 나에게 안겨줄지, 잘못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작은 유리병 하나 들듯이 다소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동화 '구두장이 요정'에서 기원한 이 이야기의 스토리는, 모습을 변화할 수 있고 늙지 않는 생을 살아가는 인간화된 요정인 '안'(얀이라고도 부르는 주인공)을 통해 무한의 삶과 영원의 삶을 시처럼 풀어낸 소설이다.


이렇듯, 책 소개만 보면 거부감 없이 깔끔하게 재밌을법한 이야기인데, '시처럼 풀어냈다'라고 하는 저 한마디가 마치 무언가에 속은 느낌을 가지게끔 하는 두통을 일으킨다. 분명 그랬다. 처음 70~80페이지까지 읽는 시점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책을 읽는 것인지 멍하니 글자를 보고 있는 것인지, 다시 2~3장 앞으로 넘겨 읽어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쌀이 물과 함께 뜨거운 불 위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밥이 지어지는, 딱 그 정도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이윽고 작가 구병모만의 특유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표현들에 감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분명 쉽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문장들이다. 

누군가에게는(아니,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 듯) 분명 어렵고 난해한 책이지만, 두터운 마니아층과 생각보다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단어의 뜻이, 그 문장의 뜻이 저 100m 앞 골인지점에 있음에도, 50m 앞도 채 가지 못한 느낌을 받은 적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따라갈 수도, 흉내도 내기 힘들 것 같은 바로 그 표현들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이 같은 불완전한 몸, 신이 배열하고 조율한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육신을 입게 된 것이 오랜 노동 끝의 선물인지 저주인지, 이 몸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최초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요정들이 처음으로 지은 구두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하나의 문장을 가장 오랜 시간 뚫어지게 보게 만드는 책.

매번 도전하는 마음이지만, 어느새 만족감으로 책을 덮는..

바로 작가 구병모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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