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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Jan 18. 2024

감독에서 작가가 되는 길.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돌리고

 서로의 존중이 있는 바탕에서 시작된 일에선 감독은 광고주의 말 너머의 상황을 헤아리게 되고 또 광고주는 감독을 전문가로서 인정해 준다. 그런 아름다운 관계의 결과는 언제나 기대한 만큼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반면 존중이 없는, 보이지 않지만 명확히 자본의 갑과 을의 관계로 굳어진 관계들은 그 과정도 결과도 언제나 아쉬웠다. 1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겪었던 대부분의 일은 후자가 더 많았다. 그래서 아름다운 프로젝트는 손에 꼽는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좋은 영상을 남기겠다고 여관방에서 카피라이터 형과 며칠, 몇 달을 함께했던 지난날을 우리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적어도 나에게 창작의 고통보다는 옳다고 생각한 것을 끝내 관계의 우위로 눌려버리는 고통이 더 크다.


 며칠 전 찾아간 전시에 작가와의 대화에서였다. '나를 켜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작가와 참석한 사람들 모두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상당히 떨리는 목소리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한 번도 저를 켜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창작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 번도 자유롭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광고업계의 시스템 속에서 자주 부서졌던 부끄러운 나의 민낯을 꺼내보였다. 그러면서 "우연히 장인에게 반해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작업이 저에게 자유를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광고주가 없는 (컨펌해 줄 이 없는) 이 일에는 내 마음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고요한 클라이언트를 꺼내본다. 나는 이 프로젝트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디에 매력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고 내 속을 통과시켜 본다. 어떤 생각은 불편하고 어떤 생각은 속이 편안해진다. 그럼 편안한 생각들이 우선 나의 생각들이구나 하고 생각들을 추린다. 항상 타인의 기준에 의해 제작을 해왔던 관성 탓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꺼내는 것 조차가 쉽지 않다. 이번 전시는 우선 내 안의 이야기부터 발견하는 것이 시작이다. 나는 한국의 장인의 숭고하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전통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각자의 삶에서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 것인지 장인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나를 미래와 과거에 두지 않고 현재에 둘 수 있는 방법과 그런 태도가 몰입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것이 내가 장인을 만나며 해주고 싶은 메시지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쌓아야 뭐가 되든 된다는 게 장인들이 내게 보여준 증명이다. 이 이야기를 그때 여관방에서 같이 작업했던 카피라이터 형에게 말해줬다. 어떤 이야기는 공감했지만 어떤 이야기는 말로 전하기가 어려워 답답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무렵 형은 전시 서문을 적어 나에게 보내왔다. 아주 근사한 단어들로 꿰어있었다. '내 속에 들어갔다 왔나..?' 싶을 정도로 속이 다 시원했다.



<장인이 된, 소년>                            

KULTURE MASTERS OF ARTS


KULTURE는 MATERS OF ARTS를 주제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이를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는 장인들을 담은 영상제작 크루이다. <장인이 된, 소년 展>은 지난 4년간의 기록이 담긴 첫 번째 전시로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영상 미디어에 쉴 새 없이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순간의 호기심이 만든 덕질의 결과물이 아닌, 고리타분한 전통의 회귀도 아닌 장인들의 태도와 꾸준함을 비춘다.

수없이 내려놓고 싶은 순간에도 한 걸음씩 나아가며 정의에 이르는 길. 엄격한 원칙에 따라 수행되는 장인들의 강박과도 같은 과정들은 비슷한 맥락에 놓인 KULTURE에게 자기 증명의 수련이었는지도 모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다큐적 영상기법에 소재는 말없이 완벽하다. 빔-프로젝터라는 창(窓)을 통해 장인들의 손길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작품세계와 함께 삶의 정수를 모두가 느끼길 바랄 뿐이다.



 매번 글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서 중요한 글은 이형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이렇게 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전시장에 가면 어디에나 볼 수 있는 서문이지만 나에게 이 글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프로젝트를 멀리서 응원하는 형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이해해 준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말들을 서툴게 또 남의 힘을 빌려 조금씩 세상에 비추고 있다. 지금은 무엇하나 이거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 속에 있는 생각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시간을 갖으려고 한다. 전시를 통해서 이 일의 생김새를 더듬더듬 더듬어 나간다. 외침보다는 읊조림에 가까운 현재이지만 지금 내가 작가로 첫 발을 디디는 시점에는 적당하다고 위로해 본다. 지구에 70억 명이 존재하고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하물며 생각은 얼마나 더 다양할까. 타인의 생각을 빌려 사는 것이 아닌 고요하지만 피어나는 나의 생각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일이 전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성공과 실패 유무는 그 이후의 문제인 듯하다.

하길 잘한 것 같다.




전시 후원 안내

<KULTURE>는 모든 영상 제작비를 스태프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마련된 후원금으로 아름다운 전통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03-7125837 지은석

(후원금 사용내역은 전시종료 후에 공개적으로 사용내역을 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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