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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Jun 28. 2024

#12 왜 그랬어요?

20240628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는 아니고 


 장편을 준비하면서 어떤 질문들을 던져서 원하는 방향으로 대답을 이끌어내는지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촬영을 하면서 종종 듣게 되는 선생님의 일화도 있겠고 듣지 못했던 전반적인 일대기를 취합하여 지금의 장인이 된 결정적인 사건과 행동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말보다 손이 앞선 장인들에게는 정확한 질문이 아닌 추상적인 질문이 갔을 때 대답을 하지 않거나 "예, 아니요" 같은 듣나 마나 한 대답을 들을 확률이 높다. 다큐멘터리의 깊이감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질문의 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책의 내용을 발췌해 본다. 

히스미 시게히코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문학가이며 영화 평론뿐 아니라 문학 비평계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한 거장 비평가다. 그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프랑스 영화감독인 장 뤽 고다르의 열혈 팬으로, 본인이 직접 그를 만나는 잡지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러나 상대가 워낙 거장이기에 좀처럼 만날 기회가 닿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고다르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영화제에 출품할 필름 편집 일정이 너무 촉박한 관계로 일을 하면서 인터뷰해도 괜찮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중략)

보통은 "저는 감독님 영화 중에 000을 아주 좋아합니다. 본인 스스로는 어떤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가시나요?"같은 질문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런 질문에는 전혀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중략)

한술 더 떠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따위의 질문은 최악의 질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추상적이고 심오한 사항을 대뜸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는 식의 주문은 무례하고 비상식적으로 느껴진다.(중략) 하스미는 이렇게 운을 뗐다고 한다. "선생의 영화는 대부분 상영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로 짧은데, 그 이유가 당신의 직업적 윤리관 때문입니까?" 


책의 내용에서 말하는 좋은 질문의 핵심은 그가 지금 마음을 쏟고 있는 대상(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까지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화는 3시간 정도의 긴 러닝타임이 주를 이뤘는데 이것에 제대로 거른 편집의 영화가 아니라는 시선이 있었다. (관객이 아닌 감독의 입장의 편집) 


나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종 선생님이 자식들과 아내도 있는 상황에서 "절에 들어가 종을 만드는 것에 매진했을 때, 그때 왜 그곳에 계셨습니까?"라는 질문은 뻔한 예상답변이 그려진다. "간절했어.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면 안 되는 법이야"라고 내가 아는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할 것 같았다. 그럼 이 질문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어떤 심정이었길래, 어떤 상황이었길래 절까지 들어가서 스님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종을 만들었는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없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인지,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삶에 명확한 답을 주는 대답도 좋지만,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대답도 여전히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감과 본인의 직업적 열망 사이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장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갖고 있는 난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의 곁이 아닌 곳에서 자신의 직업에 몰두하는 것이 과연 무책임한 것인가라는 것도 들어볼 법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본인과 꿈만 남겨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요즘 시대의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 보아도 삶의 많은 부분을 비우고 자신의 꿈으로만 채우는 것을 종종 목격하는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올해 초에 작업한 길스토리의 왕진의사 양창모선생님이 생각났다. 춘천에 소양강댐으로 수몰된 지역의 어르신들을 왕진하며 돌보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게 되었는데, 촬영하면서 중간중간 많은 인터뷰를 했다. 나는 나이 든 어르신과 갓난아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제 막 아빠가 된 내 입장과 생각을 이야기했다. 형식적인 인터뷰를 뚫고 서로의 공감과 깊은 대화가 오갔었다. 그런 대담사이에 영상이 퍼즐처럼 맞춰졌고, 우리는 그때의 이야기와 기억들을 꽤 좋게 기억하고 있다. 영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펀딩을 이뤘고 그 이후에 후속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시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좋은 성과를 통해서 어르신들의 집이 고쳐지고 그로 인해 다치지 않게 되었는데요. 반면 저희는 이제 자주 뵙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묵묵히 이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이 문득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이벤트가 지나간 후에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선생님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눈이 촉촉해지셨다. 이런 좋은 일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있겠지만 결국 홀로 외롭게 나아가야 하는 본인을 알아봤다고 생각한 눈치였다. "제가 올라탄 버스에 지금 감독님이 탄 거죠. 그리고 언젠가는 내려야 하는 거고요.." 서너 시간의 인터뷰 다선 번 정도의 촬영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다. 


종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것은 앞으로 계속 곱씹으며 기록해야겠다. 

오늘은 왕진의사 양창모선생님의 영상으로 마무으리~


https://www.youtube.com/watch?v=qFY2xQPzj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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